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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문화 다 신작 미니픽션] 김경은 소설가의 「검지」(20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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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지

김경은(소설가)

 

윤옥은 모두를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훔쳐간 아이를 찾아내는 야만적 행위를 할 생각이 없었다. 시각 자극은 소비욕망을 부른다. 두 달 전, 교실에서 지갑을 잃어버린 지우가 이 문제를 학급 차원으로 확대하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윤옥은 그렇게 이해한다. 명품 지갑을 학교에 가져온 아이가 있기 때문에 훔친 아이도 있는 것이다.

지우야. 너도 잘못은 있고…….

미니스커트 입은 여자는 당해도 싸다는 얘기랑 뭐가 달라요? 윤옥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지우는 발끈했다. 지갑도 지갑이지만 거기 든 사진이랑 친구들에게 받은 쪽지하며…… 혜리가 그걸 쓰레기통에 처박은 생각을 하면 화나요.

왜 아니겠니. 그렇지만…….

예상보다 지우의 반응은 거세고 단호했다.

지우의 지갑이 문제가 된 건 최근의 일이다. 지우는 예상대로 윤옥의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듣고 보면 혜리가 분명 잘못했다. 혜리는 지우가 무엇 때문에 화를 내는지 몰랐다. 그것이 지우를 더 화나게 했다. 들켰을 때 바로 인정했으면 일은 오히려 간단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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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옥은 지우를 쳐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신경 쓰이는 아이들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혔다. 그 가운데서도 항상 한두 녀석이 문제였다. 대체로 그랬다고 윤옥은 교직생활 이십여 년을 걸고 말해도 무방했다. 지우는 언제나 아이들에 둘러싸여서 그들을 동조자로 끌어들이는 데 남달랐다. 리더십을 발휘하는 아이는 반에서 한둘 정도 나타나게 마련이라 지우가 아주 드문 성격의 아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의견을 끌어가는 방향이 문제라고 생각하며 윤옥은 줄곧 지켜보는 중이었다.

가만 보면 하지 말라는 일을 지우는 언제나 하고 있었다. 한 학기가 지나고 윤옥은 마음을 바꿔먹는다. 그러고 보니 처신이 능한 아이였다. 나무랄 수 없는 면모지만 지갑 사건만큼은 담임으로서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많은 아이를 상대하는 윤옥은 어떤 상황에서도 가능한 한 원칙을 지키려 했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을 다스리기 힘들었다. 어설픈 선의는 아이들 사이에서 바보 인증이었다.

최근 지우는 윤옥에게 신경전을 걸어왔다. 명품은 학교에 가져오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건만, 하긴 말을 들으면 요즘 아이들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모든 아이들이 규율을 어기지는 않았다. 아이들이었으므로, 대개의 아이들은 규율을 적당히 지키고 적당히 어겼다. 항상 한두 녀석이 문제였고 지우는 규율을 안 지키는 편이었다. 학기 초에는 지우가 말귀를 잘 알아듣고 또래에 비해 맥락을 파악하는 아이라고 생각했다. 좀 문제가 되더라도 신뢰를 보냈고 지우도 그런 윤옥의 마음을 분명 읽고 있었다. 지각이 잦아도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할 만한 아이라 믿고 윤옥은 지우를 크게 질책하지 않았다.

검지손가락 같은 아이들이 있다. 엄지야 홀로 떨어져서 나머지 손가락들이 꼽히든 펴지든 상관 않는 독립형 또는 고립형이지만 검지는 아주 달랐다. 엄지 외의 손가락들과 붙어 있으면서 주위에 영향을 미쳤다.

혜리는 지우의 지갑을 탐냈지만 막상 훔치고 나서는 사용할 수 없었다. 반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음료를 사고 떡볶이 값을 지불하겠다고 만날 지갑을 꺼냈다 넣었다 할 강심장은 많지 않았다. 명품 지갑은 손에 넣은 뒤로 아주 골칫거리가 돼버렸다. 친구의 도움으로 인터넷 중고몰에 내놓았고 일주일치 용돈을 거머쥐자 잠시 즐거웠으리라.

문제는 변심한 고객이 반품하면서 발생했다. 혜리가 떨어뜨린 지갑을 같이 있던 반 친구가 보았다. 혜리가 시침을 떼더란 말과 함께 그 상황이 고스란히 지우에게 전달되었다. 친구는 책갈피처럼 펼쳐진 지갑에서 튀어나온 브랜드카드에 주목했다. 신분증을 넣고 다니는 자리에 꽂혀 있던 브랜드카드를 지우가 빼지 않은 일이 실마리가 되었다.

반 규율을 들어 잘못을 따진다고 물러설 지우가 아니란 걸 모르는 혜리. 징징거리며 엄마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그 엄마에 그 딸 들이라니. 혜리 엄마가 지우 엄마에게 사과하자 지우 엄마는 사과 받을 사람은 자기가 아니라고 한발 물러섰다. 무단결석하는 버릇을 잡기 위해 도움을 요청했을 때 병원 진단서를 떼어 보낸 게 지우 엄마였다는 걸 윤옥은 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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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죠? 선생님 조언대로 전화했는데…… 혜리 엄마가 털어놓는 이야기를 들으며 윤옥은 담임으로서 결국 나설 수밖에 없었다.

지우야. 넌 그걸 백화점에서 제 값 다 주고 샀지만 지금 인터넷에서 사면 그 반값이고…… 너희 엄마 말씀대로 당사자끼리 해결하기로 한다면 학생이 무슨 돈이 있겠니?

이럴 때 보면 지우가 말귀를 알아듣는다는 판단은 틀렸다. 규율이란 규율은 모두 어기면서 자신의 입장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지우는 이기적인 아이라고 윤옥은 정정했다. 특유의 처신으로 그 이기심을 포장한 게 지우의 인기 비결이었다.

엄지보다 검지! 어수선한 분위기에 윤옥이 종례를 미루고 교실을 나온 날이었다. 한 시간 뒤에 다시 가보니 아이들은 시키지도 않은 반의 좌우명을 정하고 있었다. 지우가 주도해나갔다. 무언가를 지칭할 때 반드시 쓰는 손가락! 분명하면서도 시크해서 짤뚱한 엄지보다는 스타일 나잖아? 지우의 너스레에 야유와 환호가 동시에 터져 나왔고 지우의 안이 채택되지는 않았지만 윤옥은 왠지 그날 상황이 괘씸했더랬다.

선생님이 모르시는 게 있어요. 혜리는 상습범이에요. 담임인 윤옥이 그렇게 사정하면 대개의 아이들은 한 발 물러섰다. 지우는 또박또박 말을 이어간다. 혜리 폰에는요 물건 캡처해놓은 사진이 잔뜩 들어 있어요. 그게 뭐겠어요? 친하지 않아서 제 눈으로 직접 본 건 아니지만 훔친 물건이라고, 애들 말이 그래요. 윤옥은 지우의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우는 경찰서 홈페이지를 통해 문제의 사건에 최소 백만 원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는 답변을 얻어냈다. 윤옥은 엄지와 검지를 감싸 쥔다. 교직생활을 그만두고 싶을 때라면 이런 때였다. 지우는 혜리를 협박해서 지갑 값을 정확하게 받아냈다. 1학기 반장 선거 때 지우는 자칫 반장이 될 뻔했다. 상위권 성적에서 반장이 나오면 좋겠어. 그나마 신입생이던 아이들은 윤옥의 말에 따랐고 지우는 부반장으로 밀려났다. 어느 새 윤옥은 감싸 쥔 손가락을 꺾고 있었다. 의무는 모르고 주장만 있는 학생이 리더가 되는 건 위험하다는 게 윤옥의 지론이었다.

 

 

 

 

 

작성일 : 2017.10.16
저자 소개  

김경은
소설가.
1966년생. 인천 출생. 2005 <실천문학> 등단. 단편 「절연구간 건너기」「의사가 없다」「노래」「아이네아스, 밤의 나라」「민원 있습니다」 등, 장편 󰡔딜도󰡕, 인문콘텐츠 전자책 「대중은 하이브리드를 좋아해; 뱀파이어 이야기」「자서전, 디지털시대의 공감 글쓰기」 등 comet11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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