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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문화 다 신작 미니픽션] 김유담의 「입원」(20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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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원

 

김유담(소설가)

 

D-50

 

   영감쟁이가 이번에는 진짜 노망이 났다. 내사 몬살겠다. 이기 보통 일이 아이다.”

 

  분례가 전화기에 대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대수에게 노망났다며 비난을 퍼붓는 게 하루 이틀 일은 아니었다. 부부싸움이 벌어질 때마다 분례는 대수가 노망이 들었다며 불같이 화를 내곤 했다. 더 이상 남편에게 꼼짝 못하던 젊은 시절의 분례가 아니었다. 여든 살쯤 되면 과거의 자신과는 다른 사람이 되는 걸까. 흥섭은 얼굴을 찌푸리며 전화기를 귀에서 조금 멀리 떨어뜨렸다. 분례는 가는귀가 먹은 이후로 부쩍 목소리가 커졌다.

 

  “퇴근하고 집에 들를라 카이, 난중에 얘기하입시더.”

 

  전화를 끊은 흥섭은 사무실 밖으로 나와 건물 뒤편 흡연구역으로 향했다. 30여 년 전 신출내기 공무원 시절에는 사무실에서 줄담배를 피워대는 이들이 부지기수였는데, 건물 뒤 후미진 곳에 마련된 흡연부스에 서서 잔뜩 움츠린 채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는 자신의 꼴이 조금 처량하다 싶었다.

 

  “나도 늙었는갑다. 와 이래 옛날 생각이 나노.”

 

  천천히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흥섭이 혼자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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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40

 

  시골 목욕탕은 토요일인데도 사람이 거의 없고 한산했다. 등이 굽어진 채로 목욕의자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대수의 알몸은 앙상하고, 초라했다. 흥섭은 이태리타월에 비누를 묻혀 아버지의 등에 갖다 댔다. 팔에 힘을 주고 등을 밀었지만, 때가 밀리는 것이 아니라 늘어난 살가죽이 밀렸다.

 

  “섭아, 내 아무래도 안 되겠데이.”

 

  “뭐가예, 아부지.”

 

  “아무리 생각해도 너거 엄마랑은 몬 살겠다. 그기 내가 내린 결론이다.”

 

  “이때까지 살아놓고, 인자 와서 몬 살겠다는 게 말이 됩니꺼. 엄마도 아부지 때문에 고생 마이했습니더. 엄마가 시장에서 국밥 장사 안했으면 우리 5남매 대학공부도 못했을 낍니더. 이런 촌에서 자슥들 다섯이나 대학 보내는 기 쉽습니꺼 어데.”

 

   내 말이 그 말이다. 너거 엄마는 국밥집도 있고, 너거들도 있고, 그래놓이까 걱정이 안 된다. 내 없어도 괜찮다 이 말이다. 근데 그 과수댁은 아인기라. 이혼하고 자슥도 다 뺏기고, 살 궁리도 마땅치가 않아가꼬 내가 보기만 해도 안쓰러버 죽겠다.”

 

  비누칠을 하던 흥섭의 손이 멈췄다. 흥섭이 고개를 내밀어 대수의 얼굴을 보며 물었다.

 

  “아부지예, 과수댁이라 했습니꺼. 그기 무슨 소리라예?”

 

  “니도 알고 있다 아이가. 저짝에 뱀골 사는 과수댁 말이다. 그 과수댁이랑은 벌씨로 말이 다 돼 있는 기라. 너거 엄마만 갈라선다고 결심을 해주믄 다 되는 긴데. 니도 그 과수댁 알제? 참 곱데이.”

 

  대수가 입가에 웃음을 머금은 채 동의를 구하는 표정으로 아들을 쳐다보았다. 흥섭이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 뱀골 과수댁이 언제적 얘긴데 그 얘기를 하십니꺼. 잘 알지예. 아부지 그때 읍내에서 그 과수댁이랑 살림 차리가꼬 한동안 집에도 안 들어오시고, 동네에 소문 다 났던 거 제가 우째 까묵겠습니꺼. 엄마는 지금도 그 때 얘기만 나오면 이를 바득바득 가는데, 갑자기 그 얘기는 와예? 그 과수댁이 우쨌다고예.”

 

  “그 과수댁이 참하고, 순하고, 세상에 그런 여자가 읎는 기라. 너거 엄마같은 여자캉은 비교가 안 된다.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 과수댁이캉 살아야겠다. 너거 엄마가 죽어도 이혼은 몬해 준다꼬 버티고 있어가 내가 머리가 아프다 아이가. 너거 엄마가 섭이 니 말이라카믄 뭐든지 덮어놓고 좋다카이까네, 니가 한분 말해보그라이.”

 

  “아부지, 진짜 와 이캅니꺼. 정신 좀 차리이소.”

 

  흥섭이 울상을 지으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멀찍이 등을 보인 채 때를 밀고 있는 중년 남자 외에 다른 손님은 없었다. 혹시 아는 사람이라도 있는 게 아닐까 신경이 쓰였다.

 

   나이도 올해 서른일곱 살인기라. 딱 좋은 나이제. 한분 결혼에 실패했다 캐도 충분히 다시 시작해도 되는 나이라.”

 

  “서른일곱예? 아부지 나이가 올게 맻 살입니꺼.”

 

  “니는 아부지 나이도 모르나, 새끼야. 올해 사십 아이가. 그 과부캉 딱 세 살 차이인기라. 너거 엄마는 내보다 한 살이 많다 아이가.”

흥섭이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아부지, 내 나이가 올게 오십일곱 살입니더. 정년퇴직이 내일 모레라예.”

   니가? 하이고, 흥섭이 니 나이 많이 묵었네. 세월이 이래 빠르다카이.”

 

  대수는 흥섭의 나이를 듣고도 본인이 방금 한 말의 오류를 깨닫지 못했다. 샤워기를 틀어 몸을 한번 씻어낸 다음 천천히 탕 쪽으로 걸어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흥섭은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대학 졸업 후 도청 소재지에서의 근무를 포기하고 이곳 읍사무소 발령을 자처한 것은 부모 때문이었다. 그러나 가까이에 산다고 해도 노부와 노모를 제대로 모시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차라리 서울에서 살면서 일 년에 두 번 명절에만 찾아오는 남동생이 부럽기도 했다.

 

  “설마, 모실라 카는 생각은 아니지예?”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아내가 날카롭게 물었다. 아내의 첫 마디에 흥섭은 버럭 화부터 냈다.

 

  “누가 니보고 모시라 카드나.”


  치매 걸린 시아버지, 귀 어두운 시어머니를 아내더러 감당하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럼에도 아내가 먼저 모실 수 없다는 말을 무 자르듯 할 때는 마음이 찬바람 든 무처럼 스산해졌다.

 

  “우짤 깁니꺼. 형님들이나 동서도 못 모신다 칼 껄요.”

 

  “장남인 내도 몬하는 상황인데 우째 동생이나 누부야한테 짐을 지우겠노. 가실 만한 좋은 데를 알아봐야겠제.”

 

  “좋은 데 어디예?”

아부지가 편안히 쉴 수 있는 데.”

 

 

D-15

 

   분례는 아침부터 분통이 터졌다. 아침을 먹다말고 대수가 밥상을 엎어버린 것이다. 정작 밥상을 엎어버리고 싶은 이는 분례였다. 성질대로라면 수십 번 수백 번도 엎었을 밥상이었다. 하지만 밥을 짓고, 밥을 차려본 사람은 함부로 밥상을 엎을 수 없는 노릇이라고 분례는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엉망이 된 안방을 치우다보니 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왜 하필 그때로 돌아간 걸까. 치매에 걸리면 과거의 한 시절을 자주 회상하고, 과거와 현재를 착각하게 된다는 것 정도는 분례도 알고 있었다. 차라리 전쟁 중이나 똥오줌 못가리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 패악을 부린다면 안쓰럽게 생각해줄 수도 있었다.

 

  “내가 살기 싫다 카는데 또 무슨 이유가 더 필요하노. 도장 찍어돌라 안카나!”


  밥상을 앞에 두고 대수가 소리를 질렀다. 과거의 분례였다면 악을 쓰며 덤볐을 것이다. 지금도 그 순간의 기억은 몸에 박힌 듯 생생하다.

 

  “누구 좋으라고 이혼을 해 주노. 생떼같은 자슥들 팽기치고 기집한테 미치가 집을 나간다는 기 말이 되는 소리인교. 내가 죽었으면 죽었지 우리 새끼들 이혼한 집 자슥으로는 안 맹들끼다! 그 년이 그래 좋으믄 나가서 그 년이랑 뒤지뿌든지.”

 

   대수가 화를 참지 못하고, 분례에게 주먹질과 발길질을 하는 것으로 늘 싸움은 마무리가 됐다. 아니, 싸움이 아니라 분례가 일방적으로 당하는 폭력이나 다름없었다. 분례는 몸을 웅크린 채 대수의 발길질을 받아내면서 이를 부득부득 갈곤 했다. 나중에 늙으면 복수하겠다며, 벼르고 또 별렀다.

 

  분례의 짐작대로 대수의 바람은 오래 가지 못했고, 1년도 채우지 못한 채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늙어서 복수하리라는 분례의 바람도 이루어졌다. 평생을 한량처럼 살아온 탓에 대수는 수중에 돈이 없었고, 돈주머니를 꿰찬 분례에게 대폿값이라도 받아쓰려면 대수는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분례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진 게 가는귀가 먹은 탓만은 아닐 거라고 흥섭은 생각했다.

 

  복수라고는 했지만, 사실 남들이 보기에는 이상한 복수였다. 분례는 대수가 좋아하는 음식들로 세 끼 밥을 정성스럽게 차렸고, 한여름에는 모시에 풀을 먹여 빳빳하게 다림질한 옷을 대수에게 입혔다. 다른 지역에 사는 자매들이 며칠씩 다녀가라고 해도 대수 밥 때문에 집을 떠날 수 없다고도 했다.

 

  함께 시장을 다니고, 텃밭을 가꾸면서 노년을 보내는 부모를 보면서 흥섭은 그나마 부모를 모시지 않고 있다는 죄책감을 덜 수 있었다. 아버지를 구박하고 욕을 해대는 어머니의 퉁명스러움 밑에 깔린 또 다른 진심은 더 깊은 사랑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어떤 상처는 여전히 회복될 수 없는 법이다. 대수가 하필이면 그 때의 기억만을 계속 재생하고 있다는 것은 분례에게 더 큰 상처로 남았다. 어쩌면 그 시절이 대수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분례를 더욱 미치고 팔짝 뛰게 만들었다.

 

  분례는 자신의 마지막 자존심마저도 지켜주지 않은 대수가 원망스러웠지만, 그래도 대수를 마지막까지 책임지고 싶었다. 대수가 늙고 병들어 의탁할 데 없는 처지가 되기를 기다렸고, 그런 대수를 곁에 두는 것을 복수라고 여겼던 분례였다. 하지만 이젠 모든 것이 버겁게만 느껴졌다. 세월은 분례의 몸도 공평하게 통과했고, 그녀 역시 점점 노쇠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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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7

 

  그곳을 둘러보는 분례의 표정이 착잡했다.

  

  “마지막 순간을 편안하게 보내실 수 있도록 최대한 아늑하고 편리하게 꾸며놓았습니다.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어요.”

 

  흰옷을 입은 여자가 친절한 미소를 띠며 마지막 순간이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내뱉었다. 평소라면 잘 들리지 않을 소리였는데, 오늘따라 선명하게 귀를 파고들었다.

 

  “너거 아부지 밥은 묵었는지 모르겠다. 채리놓고 오긴 했는데…….”

   앞마당에 나와 담배를 피우는 흥섭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분례가 말했다.

 

  “인자, 엄마는 좋겠소. 아부지 밥 신경 안 써도 되고.”

 

  “그래, 좋다! 좋아서 춤을 출 노릇이다. 할배만 없으면 내가 훨훨 날아 댕기고도 남지. , 인자 집에 가자.”

 

  지팡이를 짚은 채 분례가 먼저 앞서 걸었다. 뒤따라 걷는 흥섭을 바라보지 않고 앞으로 걸어가면서 분례가 말했다.

 

  “결국은 내도 마지막엔 일로 와야겠제.”

 

  “지도 마찬가지입니더. 다 똑같습니더.”

 

D-day


 

  분례는 아침 일찍 일어나 대수가 좋아하는 고깃국을 끓였고, 잡채를 버무렸다. 차려진 밥상은 잔칫상처럼 푸짐했지만 집안 분위기는 초상집 같았다. 5남매 내외가 모두 모였는데 다들 아무 말이 없었고, 딸 셋은 계속 눈물만 찍어대고 있었다.

   그라믄 니가 모시갈래?”

 

  마당에서 흥섭과 재섭이 다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도 이거는 경우가 아이지. 장남이 왜 장남이고?”

 

  “내도 할 만큼 했다. 그라는 니는 한 기 뭐 있노.”

 

  분례는 가만히 앉아 손으로 부채질을 했다. 깨끗하게 새 옷을 차려입은 대수 혼자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었다.

 

  “오늘이 누구 생일이가?”

 

  대수가 물었고, 식구들은 서로 눈빛만 교환하고 대답이 없었다.

   식사나 하이소.”

 

  분례가 대수의 컵에 물을 따라주며 말했다.

 

  오늘 당신은 그곳에 가게 될 거라고, 그곳이 당신이 마지막 장소가 될 거라고, 그리고 아마 우리 모두 나중에는 그곳에 가게 될 거라는 말을 아무도 대수에게 하지 못하고 있었다.

   식구들 오랜만에 다 모이가꼬, 오늘 기분이 윽수로 좋다.”

 

  대수가 웃으며 숟가락을 들었다. 분례는 대수와 눈을 맞추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벽에 걸린 괘종시계를 올려다보았다. 노안 탓에 분침의 바늘 끝이 흐릿하게 보여 여러 번 눈을 끔뻑거렸다. 정확한 시각을 알 수는 없었지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만큼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작성일 : 2018.03.05
저자 소개  

김유담
소설가.
1983년 출생. 201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핀 캐리」로 등단. neverend1130@hanmail.net
[댓글]
 
SH  [2018-03-08 15:12]
잘읽고 갑니다~
부모가 돈이 많아야 자식들이 모시려고 하겠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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