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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욱의 비평 항해 일지] 내 안의 장님이여, 시체여, 진군하라! (1)

권여선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 (창비, 2016)


 전성욱(문학평론가)

 

1

 

  취한다는 말이 새삼스럽다. 사람을 도취시키는 많은 것들 중에서도 그것이 바로 술과 같은 물질이라면, 정신을 취하게 하는 그 숙취의 형이상학은 충분히 유물론적이라 하겠다. 안녕 주정뱅이』는 그렇게 인생사 도취의 형이상학을 유물론의 이치로 심오하게 품어낸 소설집이다. 그러니까 그 단편의 면면들은 명징한 이성의 논리로는 도저히 다 풀어낼 수 없는 사람살이의 미묘한 지대를 알코올의 화학적 힘에 기대어 더듬거린다. 취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일들 앞에서 우리는 그 무엇에라도 기대려고 하는 미약한 존재라는 것, 난폭 앞에서 항거하지 못하는 자기의 무력함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삶들. 그렇게 취한 말들과 함께 바른 자세로 서 있지 못하는 어떤 비틀거림이, 오히려 각각의 작화를 폐쇄적인 완결로 미봉하지 않게 만들었다. 인생의 독배가 예술의 축배가 되는 이 아이러니야말로 권여선이라는 고단수의 주객(酒客)이 얻어낸 고귀한 행운이 아닐는지.

 

   일곱 편 모두가 고르게 단단한 이 소설집을 다 읽은 뒤에 나는 이런 마음으로 달떴다. 무엇보다 작가의 말에다 이렇게 적어놓은 권여선이라는 사람과 같이 밤새 술을 마시고 싶다는 간절함. “술자리는 내 뜻대로 시작되지 않고 제멋대로 흘러가다 결국은 결핍을 남기고 끝난다.” 홍상수 영화의 남녀들이 그렇게 마셔대는 징한 차이의 반복이 바로 그 결핍과 관련된 것이 아니었던가. 끝내 헛헛할 뿐이지만 을 찾는 그 애틋한 몸짓의 무한한 도전과 좌절을, 그럼에도 그렇게 되풀이할 수밖에 없는 들의 그 채워지지 않는 실존의 구멍을 향한 완고한 집념. 채우려고 마시는 술이지만 취할수록 게워내고, 끝내 텅 빈 걸음으로 구역(嘔逆)의 밤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게 만드는 통음의 덧없음. 그러니까 술이란 자기의 고독을 확인하는 단독성의 매개물이라는 것. 그것을 아는 고독한 여자와 함께 술을 마신다는 것은 얼마나 농염한 희롱의 시간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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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봄밤은 이 소설과 제목이 같은 김수영의 시를 이렇게 인용하고 있다.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靈感)이여라는 구절. ‘절제라는 어휘가 이 시구를 지배한다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이 바로 그 절제의 대상이다. 그러니까 절제서둘지않는 행동이다.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이지만 서두르지 않고 절제해야 한다는 것. 그래야 아둔과 가난이 마치 귀여운 아들과도 같은 무엇을 낳는 위대한 영감의 순간으로 비약할 수 있다는 것. 그러니까 소설은 그 절제로써 사랑한 여자의 이야기다.

 

   수환과 영경, 아내에게 배신당한 남자와 남편의 식구에게 자식을 빼앗긴 여자. 그렇게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어느 봄밤에 만나서 꾸린 가정. 그러나 남자에게 찾아온 악성의 류머티즘과 여자를 사로잡은 알코올 중독이 이 가정을 흔들어버린다. 상처받은 자들의 애틋한 만남이 불운의 덫에 걸렸으나, 남자와 여자는 서둘러 절망할 수 없었다. 밤이 봄을 삼키듯 병이 육체를 뒤덮으나, 끝끝내 그들은 서로를 포기하지 못했다. 더는 참지 못하고 술을 마시러 나갈 수밖에 없는 여자를 기어이 붙잡지 않는 남자의 마음이, 서둘러 절망하지 않는 예의 그 절제였으리라. 여자가 마지막 외출을 나간 사이 남자가 죽고, 장례가 끝난 뒤에야 의식불명이 되어 요양원으로 실려 온 여자는 마침내 알코올성 치매로 정신을 놓아버린다.

 

   그러나 이 여자의 언니들은 그것이 또한 견디기 힘든 것을 견뎌낸 엄청난 절제였음을 알았다. “연경의 온전치 못한 정신이 수환을 보낼 때까지 죽을힘을 다해 견뎠다는 것을, 그리고 수환이 떠난 후에야 비로소 안심하고 죽어버렸다는 것을, 늙은 그들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여자는 금주(禁酒)를 견뎌내지 못한 것이 아니라 음주를 통해 죽어가는 남자와의 이별을 견뎌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술은 그녀가 절제할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이었다. 봄밤에 만나서 봄밤에 헤어진 두 사람의 사랑은 그 절제로 인하여 하나의 영감으로 빛나게 되었으리라. 정신을 놓아버린 여자를 하루 종일 울게 한 그 귀여운 아들조숙한 소년 같기도 하고 쫓기는 짐승 같기도 한, 놀란 듯하면서도 긴장된 두 개의 눈동자로 그녀를 찾아왔다. 봄이 밤을 지새웠듯이 그들의 병든 육체는 술로써 절제를 얻어 귀여운 아들을 잉태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른 여자에게 연인을 빼앗기고도 말없이 참았던 한 여자, 이 여자의 남자였던 간병 소년 종우의 그 가벼운 삽화마저도 봄밤의 절제를 현상하는 서사로 연결시키는 섬세함. 마찬가지로 봄밤은 남자와 여자의 가족들이 내뱉은 짧은 탄식마저도 가벼이 넘겨버릴 수 없는 생의 이치로 무겁다. 그러므로 나는 이 소설에 대해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시를 녹여낸 소설의 연금술, 하나의 쉼표마저도 아득한 비밀을 품은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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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봄밤이 절제의 고통으로 이룩한 사랑의 한 모습이었다면, 삼인행은 당도함으로써 끝나는 여정이 아니라 도착 없는 여행을 통해 유예될 수밖에 없는 남녀의 이별을 그리고 있다. “우리 다시는 서울로 못 돌아가도 괜찮을 것 같지 않냐?” 이들의 여행기는 재귀함으로써 완결되는 여타의 여행서사들과 다르다. 이와 같은 귀환의 불투명함과 함께 이 여행이 특이한 것은 주란과 규, 이 부부의 이별 여행에 친구 훈이 함께하는 삼인행의 형식이라는 점이다. 훈은 여행의 동반자이자 관찰자이다. 그 관찰의 예리함으로써 훈의 서사적 기능은 미학적 감응을 불러일으킨다. 소설의 처음과 끝에 대한 관찰이 이러하다. 여행을 떠나기 위해 부부를 기다리는 훈이 주차장 축대를 묘사하는 첫 장면. “축대를 구성하는 회색빛 축석들은 찍어낸 듯 모양과 크기가 똑같았는데, 표면에 새겨진 무늬가 아무리 봐도 불가해하고 불균형했다.” 반복 속의 차이, 같음 속의 다름, 그러니까 지속 가운데의 단절을 이 문장은 이렇게 멋지게 압축해놓았다. 회색빛 축석의 똑같은 크기와 모양이 무미건조한 지속이라면, 그 표면에 새겨진 불가해하고 불균등한 무늬는 우연한 단절인 것이다. 무료한 반복을 견디게 하는 것은 그 느닷없는 단절이 발생시키는 놀라운 차이이다. 그러므로 차이는 반복을 구원한다.

 

  그러나 차이는 반복 가운데서 태어나며 우연이란 필연을 극복한 창조이기에, 마찬가지로 반복은 차이의 씨앗인 것이다. 그러니까 이 삼인행은 바로 그 반복과 차이를 부정의 변증법으로 돌파하는 만만치 않는 여정임을 알 수 있다. “갑자기 뭔가 중단되었을 때에야 그것의 지속을 얼마나 갈망해왔는지 알게 되듯, 훈은 잘린 시간의 단애 앞에서 화들짝한 분노와 무력한 애잔함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훈이 묘사하는 소설의 마지막 구절. “눈 내리는 창백한 회색 풍경 속에서 알아볼 수 있는 거라곤 세로로 비스듬히 뻗은 길의 윤곽선과 왼편에 있는 작고 네모난 창고, 오른 편의 널찍한 타원형 텃밭 정도였다.” 눈이 천지인 세상에서 경계의 완고함은 힘을 잃는다. 눈에 묻혀 보이지 않는 것들 속에서, 보이는 것들을 가까스로 분별해 내는 것, 그것은 역시 반복의 따분함 속에서 깨닫게 되는 차이의 경이로움에 비견될 수 있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풍경에서 보이는 것들을 분별해내는 것은, 반복 속에서 간절하게 차이를 찾듯이 이 여행의 길 위에서 그들이 얼마나 애타게 무엇인가를 갈구하였는지를 가늠케 한다. 그러나 찾지 못하였으니 쉽게 돌아갈 수가 없다. 서울로의 귀환을 망설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앞서 첫 장면의 주차장 묘사가 회색빛 축석을 가리키고 있었던 것을 참조할 때, 마지막 장면의 묘사가 창백한 회색 풍경이라는 것이 흥미롭다. 이 의외의 호응이 회색으로 공통되고 있음이란, 그 어두운 빛깔이 세계에 대한 어떤 태도의 시종일관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명확한 서술은 없지만, 어느 새벽마다 규에게 찾아온다는 그놈이 규를 술 마시게 했고, 그 불면과 음주의 여파가 이 부부의 관계를 흔들어놓지 않았을까. ‘그놈은 감각적 실체가 아니라 일종의 환영인 것처럼 여겨지며, 그리하여 그 헛것을 감각적으로 표시한 것이 회색이 아니었을까. 부부의 관계를 뒤흔드는 보이지 않는 힘의 실체, 관찰자이자 여행의 동반자 훈은 그것을 회색으로 시각화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관념을 감각적인 것으로 육화하려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육화되지 않았으며, 아무리 술을 마셔대도 끝내 그 실체를 볼 수가 없었다. “옅은 취기로도 그들은 위태했다.” 이별여행이로되 이별해야하는 근원적인 이유에 이르지 못하는, 끝끝내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는 도착 불가능한 여행. 길가메쉬도, 율리시스도, 바리데기도 힘겹게 찾아갔지만 다시 돌아와야만 하는 곳이 있었다. 그러나 도착하지 못한 이들은 쉽게 돌아오지 못한다.

 

   그렇다면 나는 이 소설에 대해 이렇게 말하겠다. 그 회색빛의 떠돎을 통해 완결되지 않는 이 세계의 아포리아에 눈뜨기. 더불어 이 소설에서도 여행이라는 주선율의 서사 곳곳에 간간히 삽입된 에피소드들이 다채롭다. 한참을 우회해 들른 식당의 개가 졸음을 참은 이유를 두고 벌인 규와 훈의 토론, 만종분기점을 지나며 박종철 열사를 떠올린 규의 뜬금없는 연상에 대한 두 사람의 동의 등등. 이들은 여정의 곳곳에서 우연하게 마주친 것들에 대하여 마치 필연적인 행동인 것처럼 대립하거나 동의한다. 그러나 그들의 의사소통은 번번이 결렬되고 말았다. 이런 도돌이표 같은 결렬 역시 종착 없이 떠돌 수밖에 없는 이 세계의 어떤 불가해함을 현상하는 것이 아닐까.

 



(계속)


작성일 : 2017.03.31
저자 소개  

전성욱
1977년생. 문학평론가, 웹진 <문화 다> 편집동인.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조교수
평론집 『바로 그 시간』(2010)과 산문집 『현재는 이상한 짐승이다』(2014)가 있음. 계간 《오늘의 문예비평》 편집주간 지냄. jsw3406@hanmail.net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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