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많이 본 기사[종합]
별점 평가
★★★★★★★★☆☆
★★★★★★★★☆☆
★★★★★★★★★★
★★★★★★★★★☆
★★★★★★★☆☆☆
★★★★★★★★☆☆
★★★★★★★★★☆
위치 : HOME > 문학 > 한국문학 읽기
[박윤영의 비평 파노라마] 문 닫은 수인의 노래

― 정원숙의 시집 『수요일의 텍스트』 (천년의 시작, 2016)


박윤영(문학평론가)

 
 시인의 탄생, 모나드의 숙명


   예술가란 어떤 존재일까. 왜 어떤 사람들은 시인이 되는 것일까. 정원숙은 신작 시집 『수요일의 텍스트』에서 이 같은 의문에 답한다. 시인의 존재론적 고민과 관련해서 우선, 이 시집에 수록된 가장 첫 번째 시이자, 1부의 표제작이기도한 「모나드」를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모나드’는 라이프니츠에 의해 활용된 개념으로, 이는 “모든 복합적인 집합체를 구성한다고 증명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들을 분리해내려”는 시도이다. “물질세계에서 더 쪼갤 수 없는 입자를 원자라고” 부르듯이, “라이프니츠는 정신세계에서도 그런 입자가 있다고 상상하고 이를 모나드”로 지칭했다. 철학자 윤선구에 의하면, 모나드는 개체성을 지닌 존재로, 합성과 분할, 소멸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우주 전체의 모나드는 창조에 의해서만 생성되며 그 수 또한 일정하다. 모나드는 그 자체로 소우주를 이루고 있으며, ‘입구’와 ‘창’이 없기 때문에 서로 간에 어떠한 영향도 주고받지 않는다.


   정원숙의 시에서 이 ‘모나드’라는 개념이 중요한 까닭은 그녀 스스로가 자신을 시를 쓰도록 운명 지어진 하나의 모나드로 인식하는 것과 연관된다. “창문은 원래 없었고 깨진 유리 조각도 애초에 없었습니다. 구속하고 인내하고 굶으면서 골똘히 생각이라는 물질을 만집니다.”(「모나드」)라는 구절에서 우리는 정원숙이 지닌 시인으로서의 자의식과 존재론적 확신을 엿볼 수 있다. 시인은 “상상으로 아기를 낳고 상상으로 아기를 사산”하며 “완전한 복화술을 익히면서 완전한 식물성을 탐구하면서 정의도 사상도 검은 흙 속에서 골라”(「모나드」) 내는 존재로, 유일한 개체성을 지닌 예술가, 즉 모나드이다. 



 시인의 욕망, 죽음 너머의 쾌락


   시인은 “살기 위해 삶을 지속”하고, 또 “죽기 위해 삶을 지속한다.”(「경계에서」)고 말한다. 그녀는 “구불구불 사행천을 이루는 너의 문장 속에서” 자신의 “신념에”(「센텐스」)에 도달하고자 분투한다. 이렇듯, 정원숙의 시는 삶과 죽음의 넘나듦 속에서 현실 너머의 무엇인가에 도달하고자 하는 절규이다.  

 

수요일큰8960212768_f.jpg

   한편, 「센텐스」에서 ‘너의 문장’을 은유한 시어인 ‘사행천’은 구불구불 휘어져 흐르는 강의 모습이 뱀을 닮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수요일의 텍스트」에서도 이 같은 뱀의 이미지는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가령, “독사와 파라독사가 경계를 지우기도 하는 곳. 독사를 잡으면 파라독사가, 파라독사를 잡으면 독사가 혀를 날름거리지요.”라든가, “뱀처럼 현명한 춘천엔 예술가도 많다지요” 등의 표현이 그것이다.(「수요일의 텍스트」) 그렇다면, 뱀의 상징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알에서 깨어난 뱀은 여러 번 허물을 벗으며 성장하는데, 이러한 점 때문에 뱀은 예로부터 ‘죽음’과 ‘부활’이라는 이중적인 속성을 지닌 이미지로 기능해 왔다. 나아가 이는 정신적인 에너지와 신성한 지혜를 의미하기도 했으며, 그 머리 모양이 남근과 유사하다는 점에 착안하여 남근(Phallus)을 상징하기도 했다. 


   라캉은 문자가 실재를 살해하고, 기표에 의한 분리가 발생하는 순간 팔루스(Phallus) 너머에서는 실재의 창조라는 역설이 발생한다고 하면서 팔루스로부터 벗어나려는 능동적인 언술행위에서 주체성의 의지를 발견했다. 이것이 바로 라캉이 말하는 ‘죽음 충동(Death Drive)’이다. 그러니깐 정원숙의 시에서 반복되는 뱀의 이미지는 그 자체로 시인이 벗어나고자 하는 팔루스, 즉 상징계의 질서이며, 그 ‘너머’로 향하는 시인의 외로운 노정이다. 그래서 시인은 “구불구불한 사행천”을 지나 “구불구불 춘천으로 가는 길”이 곧 “수요일의 텍스트”라고 썼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죽음의 모랄처럼” “끊임없이 이어지는 텍스트”이다.   


   「수요일의 텍스트」에서 화자는 독사와 파라독사의 혓바닥을 지나는 순간 “한순간, 쾌변엔 더 없이 좋은 순간이 오지요. 그 순간을 수요일의 언어로 쾌락이라고 하지요.”라고 고백한다. 라캉이 말하는 ‘죽음 충동’은 주체가 욕망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한다. 상징적인 삶 너머로 진입하려는 주체의 욕망은 때때로 죽음을 넘어서 단순한 쾌락이 아닌 고통스러운 희열(Jouissance)의 순간과 마주하게 된다. 이 시에서 “쾌변”과 “쾌락”은 시인이 “언술행위의 주체”로서 기표를 초월했을 때 느끼는 찰나의 기쁨이다. “너의 언어가 나를 핥으며 미끄러진다. 나의 잠과 너의 꿈이 한 없이 미끄러지며 녹고 있다. 이대로 죽어도 좋다고 생각한다.”(「잉여와 잉여」)는 구절이 주는 야릇함은 죽음 너머에 있는 이 특별한 “쾌락”과 관련된다. 


   이 죽음을 넘어선 “쾌락”을 위해 시인은 “온몸의 정신이 되어 고립이 고독을 밀고 고독이 침묵을 뱉어”내는 극한으로까지 자기 자신을 밀어붙인다.(「소금의 텍스트」) 시 「소금의 텍스트」에서 ‘소금’은 짠맛이 나는 백색의 결정체로, 그 자체로 하나의 모나드를 이룬다. 시인은 자신이 창조해 낸 텍스트가 소금과 같은 “찬란”한 것, 즉, 완전무결한 하나의 모나드로서 존재하기를 욕망하는 것이다. 그러나 주체의 욕망은 결코 충족될 수 없다는 것이 라캉의 주장이다. “찬란”은 늘 “손 끝 저 멀리에”(「소금의 텍스트」) 있다. 그리하여 시인은 “밀실” 속에서 혹은 그 자신이 밀실이 되어 “어제도 오늘도 만나지 못할 인연을 기다리며 천 개의 입을 달싹인다.”(「밀애」) 정원숙의 시집 『수요일의 텍스트』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바로 이 채울 수 없는 욕망이다.



 시인의 노래, 아니 우리의 노래


  그녀의 시는 “나를 열어봐, 나를 파헤쳐봐”라고 외치는 언어에 맞서 “저 마음과 이 마음이 서로 부딪쳐 피 흘”리며 “세상에서 가장 척박한 기투”를 벌인다.(「言」) 하나의 모나드로서 세상에 내 던져진 시인은 수동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시인은 그 스스로 가능성과 잠재력을 지닌 존재로 자신의 존재 가능성을 입증하기 위해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창조하며 능동적으로 세계와 기투(Entwurf , Projet)한다.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현존재가 기투하게 되면 “자신의 가장 고유한 존재 가능”에서부터 자신을 이해하게 되면서 “가장 근원적이고 본래적인 개시성(Erschlossenheit)”이 생겨나게 된다고 말한다. 모나드의 닫힌 창과 막힌 입은 이때 비로소 열린다.    


  시인의 작업실을 상상해 본다. 시인은 아무리 넓은 공간이 있더라도 그 가운데 아주 작은 공간만을 차지할 뿐이다. 그리고 모니터의 화면이라든지 원고지의 빈 칸이라든지 아무튼 더 작은 공간 속에 갇혀 좀처럼 움직이지 못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비좁은 공간에서 펜은 시인의 “손가락 사이로 뛰는 심장을 부둥켜안고” “달린다.”(「펜 속의 심장」) 거듭 말하지만 정원숙은 시-쓰기라는 속성을 지닌 모나드다. 그리고 그녀는 스스로 문 닫은 공간에서 죽음을 뛰어넘은 완전한 텍스트의 세계를 꿈꾼다. 
 

   시집 『수요일의 텍스트』는 단지 말과 싸우는 한 시인의 처절한 내적 기록에만 그치지 않는다. 시인이 그러했듯이, 우리 각자에게는 넘어서야 할 그 무엇이 있다. 우리의 삶 또한 그 가능성과 벌이는 지독한 사투이리라. 결코 끝나지 않을 그녀의 아니 우리의 노래가 들리지 않는가.

 
* 이 글은 <시작> 2016년 겨울호에 실린 필자의 글, 「치열한 몸부림의 시학」 의 후반부를 수정한 것입니다.



 별점

 대중성

  5점.jpg

 평균

 최종 별점

 예술성

 8점.jpg

6.5

8.0

 

 


 

작성일 : 2017.04.21
저자 소개  

박윤영
문학평론가
2016년 실천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숙명여대 대학원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 yuyo84@naver.com
[댓글]
⊙ 이름
⊙ 비밀번호
⊙ 이메일
댓글 남기기
비판적 문화 공동체 웹진 [문화 다]   |   www.munhwada.net(또는 com)
문화다북스 대표 강소현   |   웹진 <문화 다> 편집인 최강민, 편집주간 이성혁   |   사업자번호 271-91-00333
[웹진 문화다 / 문화다북스] 연락처 : 02-6335-0905   |   이메일 : munhwada@naver.com
Copyright ⓒ 2012 Webzine Munhwada.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