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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나만의 명장면’을 찾아] ‘금 긋기’의 영화적 상상력

- 영화감독의 소설 상록수(1935)


박정희(문학평론가)


   ‘교과서’에 수록되어 전국민이 알고 있는 이른바 ‘국민소설’이라 할 『상록수』. 이 소설에 대한 저마다의 해석과 평가가 다양하지만, 『상록수』를 읽은 독자들은 다른 작품들에 비해 유독 ‘인상적인 장면’에 대한 독후감을 많이 이야기한다. 혹자는 두레 ‘장면’이나 한낭청집 회갑연 ‘장면’을 이야기하고, 다른 혹자는 채영신이 예배당에서 쫓겨난 아이들과 함께 글을 가르치고 배우는 ‘장면’을 꼽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독자는 해당화 필 때의 바닷가에서 동혁과 영신의 연애 ‘장면’을 꼽기도 한다. 이렇듯 『상록수』는 독자들에게 ‘인상적인 장면’들을 각인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는 작품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상록수』의 힘이기도 한 이러한 ‘인상적 장면’들은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을까? 


   심훈은 「그날이 오면」이라는 시로 알려진 시인이며, 『상록수』의 작가로 알려진 소설가이다. 그러나 문인 심훈은 음악, 미술, 무용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예술인이기도 하며, 특히 그의 본업은 영화감독이었다. 그는 스스로 문필은 본망(本望)이 아니며 영화가 ‘화생(華生)의 천직(天職)’이라고 틈날 때마다 고백했다. 최근 간행된 『심훈전집(전8권)』(글누림, 2016)의 내용을 보더라도, 심훈은 시나리오와 영화소설 등의 작품은 물론 영화평론을 비롯한 수많은 영화 관련 글들을 남기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문학작품들은 영화감독이 쓴 것이라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내 책상머리에는 조그만 메가폰이 걸려 있다. 나는 아침마다 일과와 같이 그 메가폰의 먼지를 턴다. 서울로 시골로 셋방 구석에까지, 나는 이 귀중한 기념품을 잃어버리지 않고 끌고 다녔고 지금도 내 서재에 벌여놓은 모든 정물 중에 가장 높은 위치에 걸려 상보(上寶) 대접을 받고 있다.

                                                     『심훈전집(8): 영화평론 외』(글누림, 2016), 198면.


   위 글은 심훈이 당진 ‘필경사’에서 소설을 쓰던 시기에 대해 쓴 글의 일부분이다. 이 글에서 심훈은 1927년 가을 ‘계림영화사’에서 <먼동이 틀 때>를 감독할 때 진고개에서 구입해 3개월 동안이나 입김을 쏘이고 손때가 묻은 ‘메가폰’을, 소설을 창작할 때 책상머리 제일 높은 곳에 걸어두고 아침마다 먼지를 털었다고 쓰고 있다. 이 대목을 통해 『상록수』는 ‘메가폰’으로 쓴 소설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지나친 것은 아닐 것이다. 『상록수』는 ‘붓[筆]’이 아닌 ‘메가폰’으로 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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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점에서 『상록수』의 이른바 ‘인상적인 장면’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영화’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상록수』를 ‘붓’이 아닌 ‘메가폰’에 의해 창작된 소설이라고 할 때, 어떤 부분을 ‘메가폰’, 즉 영화감독의 상상력이 발휘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논의는 영화와 문학의 닮음과 차이에 대한 이론적 논의까지 고려한다면 보다 풍부해질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여기에서는 『상록수』를 영화감독의 ‘메가폰’으로 쓴 작품이라는 점을 소설의 한 대목에 대한 감상을 통해 이른바 ‘영화적 상상력’의 면모를 강조하는 것에 머물고자 한다.


   알려져 있다시피 『상록수』는 농촌운동가 최용신의 삶을 충실하게 반영한 ‘모델소설’이다. ‘인물모델’의 서사화는 전기(傳記), 소설, 극, 영화 등의 다양한 장르와 매체로 가능하다는 점을 염두에 둘 때, 『상록수』는 모델을 소설화한 텍스트에 해당하지만 그 속에 ‘모델의 영화서사화’라는 매체인식의 차원이 작용하고 있는 작품이다. 『상록수』의 이러한 점을 확인할 수 있는 다양한 텍스트들이 존재한다. 우선은 모델의 소설화에 대한 점을 확인할 수 있는 텍스트가 존재한다. 신문기사 등에서 확인할 수 있는 실존인물 최용신에 대한 정보가 그것이다. 그리고 그간 주목하지 않은 시나리오 <상록수>라는 텍스트도 있다. 심훈은 소설 『상록수』를 영화화하기 위해 시나리오로 각색했다. 따라서 소설 『상록수』는 신문기사의 소설화와 소설의 영화화 양상을 함께 확인할 수 있는 텍스트라 할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소설과 그것을 각색한 시나리오를 비교해보면 소설 『상록수』가 얼마나 ‘영화적’인가를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시나리오는 소설과 그다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소설 『상록수』가 영화서사의 언어에 충실하고 있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서두가 좀 길어졌으므로, 소설 『상록수』에서 확인할 수 있는 ‘영화적 상상력’의 백미를 소개해야겠다. 『상록수』를 읽은 독자들이 기억하는 ‘인상적인 장면’ 가운데 빠지지 않는 것 가운데 하나가 한낭청집 회갑연 장면이다. 채영신은 학교를 건립하기 위해 어린 아이들을 이끌고 마을 유지의 회갑연에 기부금을 받으러 가서 마당 가득 찬 사람들을 향해 일장연설을 한다. 잔칫집의 흥청거리는 분위기와 채영신의 비판의 연설이 부딪히는 장면. 그런데 이 장면은 『춘향전』에서 이도령이 신임 군수 축하연에서 “金樽美千人血”를 읊조리는 대목을 연상시킨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감독 심훈은 『춘향전』을 각색하여 영화화하려는 시도를 내내 가지고 있었는데 바로 이 장면을 중심사상으로 놓고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심훈의 『춘향전』의 영화화에 대한 꿈은 실현되지 않았지만 그 욕망이 소설 『상록수』의 한 장면으로 형상화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무리는 아닐 것이다. 이밖에도 ‘두레 장면’을 비롯해 소설 『상록수』는 영화감독의 상상력이 깊이 스며들어 있는 작품이다.


   여기에서는 아래에서 밑줄을 친 대목이, 바로 소설 『상록수』에서 영화감독 심훈의 ‘영상언어적 상상력’이 발휘된 또 하나의 명장면이 아닐까 말해보고자 한다.               

 

  그는 분필을 집어 가지고 교단 앞에서 3분의 1 가량 되는 데까지 와서는 동편짝 끝에서부터 서편짝 창 밑까지 한 일(一)자로 금을 주욱 그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가 예배당 문을 반쪽만 열었다. 아이들은 여느 때와 조금도 다름이 없이 재깔거리며 앞을 다투어 우르르 몰려들어온다.
 영신은 잠자코 맨 먼저 온 아이부터 하나씩 둘씩, 차례차례로 분필로 그어 놓은 금 안으로 앉혔다.
 어느덧 금 안에는 제한받은 80명이 찼다.

                                                             『심훈전집(6):상록수』(글누림, 2016), 154면.


   위에 인용한 부분은, 채영신이 주재소에 불려가서 주임에게 예배당이 후락해서 위험하니 아동수를 80명 이외에 한 사람도 더 받지 말 것과 기부금을 강제하는 것은 법률에 저촉되므로 이를 지키지 않으면 강습소를 폐쇄시키겠다는 경고를 듣고 돌아와 제 손으로 학생들을 쫓아내야하는 상황에 대한 고민과 번민을 하는 중에 취한 행동을 서술한 것이다. 130여 명의 학생들 가운데 50여 명을 쫓아내야 하는 상황. 이 상황에 예배당 바닥에 ‘한 일(一) 자 금’을 그었다. 그 금을 경계로 남을 학생과 쫓겨날 학생들을 구분하기. 학생들은 갑작스럽게 설명도 없이 주어진, 공평하지도 않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까. 이후의 서술에서 채영신은 떨어지지 않는 입으로 학생들에게 상황을 설명하지만 학생들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용을 서술한다. 다따가 축출된 50여 명의 학생들은 선생을 에워싸고 자기 사정을 호소하고 영신은 학생들의 호소 속에 포위를 당한다. 


   그러니까 이 대목은 주재소의 명령, 그에 대응하는 상황에서 교사로서 학생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갈등하는 채영신 그리고 학생들의 배움에 대한 열망 등이 집약되어 있는 곳이다. 억압과 저항의 장면을 압축시켜 놓은 것이 바로 ‘한 일(一) 자의 금’인 것이다. 이 ‘한 일 자의 금’은 소설적 상상력인 동시에 영화적 상상력에 값하는 것이라 할 만하다.

 

   처음에 그가 여기를 들어섰을 때에는 우선 泉谷里 敎會堂을 빌려 가지고 밤에는 번갈아 가며 農村婦人들과 靑年들을 모아 놓고 가르치고 낮이면 어린이들을 가르칠 때 배움에 목말라 여기에 모이는 여러 아동의 수효가 백여 명에 달하고 보니 경찰 당국에서는 80명 더 수용해서는 안 된다는 制裁가 있게 되자 부득불 그 중에서 80명만을 남기고는 밖으로 내보내야만 할 피치 못할 사정인데 이 말을 듣는 아이들은 제각금 안 나가겠다고 선생님 선생님 하며 최 양의 앞으로 다가 앉으니 이 중에서 누구를 내보내고 누구를 둘 것이냐? 그는 여기서 뜨거운 눈물을 몰래 몰래 씻어가며 어길 수 없는 명령이매 할 수 없이 80명만 남기고는 밖으로 내보내게 되니 아이들 역시 울며 울며 문밖으로 나갔으나 이 집을 떠나지 못하고 담장으로들 넘겨다보며 이제부터는 매일같이 담장에 매달려 넘겨다보며 공부를 하게 되었다.
   노천명, 「샘골의 천사 최용신 양의 반생」(『중앙』 1935.05)


   위에 인용한 것은 노천명이 작성한 최용신에 대한 기사에서 주재소의 명령과 그에 대한 강습소의 상황에 대해 보도한 부분을 옮긴 것이다. 인용한 기사의 내용은 거의 거대로 소설 『상록수』에서 형상화되어 있다. 그런데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기사에는 없는, 소설에만 있는 내용이 ‘한 일 자의 금’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인물모델의 서사화에서 ‘금 긋기’는 작가의 소설적 상상력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이러한 소설적 상상력은 영화적 상상력에서 기인하는 점 또한 확인할 수 있다. 


 

심훈1.jpg

소설가 심훈

 

   심훈은 소설 『상록수』를 완성하고 그것을 영화화하기 위해 곧바로 시나리오 각색을 마쳤다. 그리고 제작을 위해 당진에서 서울로 올라와 동분서주하다가 병에 걸려 이른바 ‘고향에서 객사(客死)’했다. 끝내 영화 <상록수>는 완성하지 못했지만 그가 남긴 시나리오 <상록수>는 그가 만들었을 영화를 상상할 수 있게 한다. 다음은 소설의 ‘금 긋기’ 대목을 각색한 시나리오의 일부분이다. 소설의 해당 대목은 시나리오에서 <S.#37 예배당 마당(早朝)>이라는 한 장면으로 각색되었다. ‘선고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얼굴들’, ‘어리둥절해서 서로 돌아보는 아이들의 눈과 눈’, 교단 위로 달려들어 영신을 포위하는 아이들. 이처럼 <S.#37>은 클로즈업과 몽타주 등의 영화언어가 결합되어 영신의 번민과 아이들의 반응을 극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장면을 연출할 수 있는 ‘영화적 상상력’은 바로 ‘금 긋기’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바로 이 ‘한 일 자의 금 긋기’야 말로 소설 『상록수』에 작용하고 있는 ‘영화적 상상력’에 해당하는 것이다. 한 일 자의 상상력을 확인하기 위해 시나리오 <상록수>의 해당 대목을 , 이 글을 마치면서 인용한다. 좀 길지만 ‘영화감독 심훈’의 면모를 알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곁들여 옮겨 놓는다.        


S.#37 예배당 마당(早朝)
(F‧I) 마당 가득히 모여들어 뛰노는 남녀 아이들
교실 들창에서 내어다보는 영신
무엇을 한참 생각하다가 원재들 청년을 불러 귓속을 한 후 걸상을 10여 개나 내놓고 백묵을 집어 교실 내에 일자(一字)를 긋는다.
반쪽만 연 문으로 아이들 꾸역꾸역 들어온다.
영신, 차례차례 금 안으로 앉힌다, 헤어본다.
80명이 찼다.
영신, 아이들을 밀어내며,
󰇅 나중 온 아이들은 이 금 밖으로 나가 앉아요.
‘오늘은 왜 이러나?’ 하고 눈치를 보는 아이들
원재와 청년들, 침통한 표정으로 장내 정돈
영신, 천천히 등단
한참 망설이고 내려다만 본다.
선고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얼굴들 (F‧S)
영신, 억지로 용기를 내어,
󰇅 오늘은 선생님이 차마 하기 어려운….
주저하는 영신
󰇅 섭섭한 말을 할 텐데….
눈을 깜박깜박하고 선생님을 주목하는 아이들 (女)
영신, 눈을 내려감았다가,
󰇅 저… 금 밖에 앉은 아이들은 오늘버텀 공부를… 시킬 수가 없게 됐어요!
어리둥절해서 서로 돌아다보는 아이들의 눈과 눈들(Montage)
머리 굵은 아이, 기립
󰇅 왜요? 선생님, 왜 글을 안 가르쳐 주신대유?
영신, 풀이 죽어(무엇에 찔린 듯)
󰇅 집이 좁아서 위험하니까 팔십 명밖에는….
다른 아이, 항의
󰇅 그럼 입때꺼정은 이 좁은 데서 어떻게 가르쳤어유?
영신, 머리를 짚고 침묵
금 밖의 아이들 하나 둘 기어서 걸어서 금 안으로 밀려들어 온다.
󰇅 선생님! 선생님!
교단으로 와르르 달려들어 영신을 포위
남녀 아이들 한 명씩 (C‧U) (FLASH) 자막과 함께
󰇅 선생님.
 [『선생님』 (P×P) 특수]
󰇅 전 벌써 왔에요.(W)
󰇅  내일은 선생님버덤두 먼저 오께요.
󰇅  아침두 안 먹구 오께요.
울며불며 영신을 포위하고 부르짖는 아이들. 저고리 끈, 치마폭 뜯어진다.
영신, 현기(眩氣)가 나서 엎드려버린다.
원재와 청년들, 함루(含淚)하며 아이들을 끌어내린다.
홀짝홀짝 울며 문밖으로 나오는 아이들
그것을 바라보는 영신, 낙루(落淚)
 『심훈전집(7): 영화소설․시나리오』(글누림, 2016), 294면.


 


작성일 : 2017.10.30
저자 소개  

박정희
1976년생. 문학평론가.
서울대 글쓰기교실 연구교수, <문학사상> 제65회 신인평론상으로 등단, 공편 『심훈전집』, 『송영소설선집』 hee001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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