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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회록의 영화 사랑] 국가폭력을 자신의 몸에 새긴 이들



: 석면, 그들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이다.




- 하라 카즈오 감독의 <센난 석면 피해 배상소송 ニッポン国 vs 泉南石綿村> (2017) 

 

임회록(영화 칼럼니스트)

 

   이 광물은 불에 잘 타지도 않으며 화학물질에도 잘 견디고 전기에도 반응하지 않는다. 그리고 쉽게 닳지도 않는다. 그래서 이를 가공하여 건축자재로 만들면 내구성, 단열성, 절연성, 방음성, 경제성 등 모든 면에서 효용성을 두루 갖춘 광물이다. 반면에 이 광물의 이 같은 튼튼함 때문에 호흡기를 통해 사람 몸속에 들어가면 짧게는 15년 길게는 50년에 걸쳐 잠복해 있다가 서서히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해 사람을 죽음으로 이끈다. 이 광물은 바로 석면이다. 석면은 경제적인 효용성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산업 전반에 걸쳐 많이 사용되다가 인체에 미치는 치명적인 영향 때문에 1급 발암물질로 지정돼, 지금은 대부분의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에서는 사용 금지된 광물이다. 

 

   이 “석면”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가 제작되었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석면이 끼치는 위험성을 국민에게 알리지 않아 많은 석면 피해를 일으켰던 일본에서 석면피해자들과 일본국가가 벌인 석면 피해 배상소송을 다룬 영화다. 한때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석면을 소비하는 나라이기도 했다. 일본 석면 산업의 거점은 오사카다. 이 영화는 오사카의 한 지역인 센난을 배경으로 한다. 일본의 센난지역과 그 인근의 한난지역은 메이지 시대부터 석면공장이 가동되어 명실상부 일본 석면산업의 중심지였다. 일본에서 석면은 그것의 경제적 가치 때문에 “꿈의 광물”로 불리우며 단열재, 절연재, 방음재 등으로 사용되었으며, 1900년대 초반부터 2006년까지 근 100년 동안 일본에서 석면은 중요한 자원으로 각광을 받았다. 전쟁에 필요한 군함, 전차 군용기 등에 단열재로 석면이 들어갔으며 방독마스크나 장갑, 방화복 등에도 석면이 사용되었다.(영화 <빠삐용>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배우 스티브 맥퀸은 50세의 젊은 나이로 숨졌는데 그의 병명이 중피종Mesothelioma이었다고 한다. 중피종은 폐암의 일종으로 석면에 노출되었을 때 걸리기 쉬운 병이라고 한다. 그가 희귀암인 중피종에 걸린 이유는 카레이싱을 할 때 석면방화복을 입은 것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석면은 제국주의 시절부터 일본 군수 산업의 핵심을 차지하였고, 패전 후에는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 등에 무기를 수출함으로써 외화를 벌어들이는 수단이었다. 또한 일본의 경제 발전기에는 건설, 조선, 철도 등의 기간산업발전에도 막대한 기여를 했다. 그러나 석면의 질기고 튼튼한 성질 때문에 인간의 몸속에 한 번 들어가면 절대 없어지지 않고 오히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폐암이나 석면폐, 악성중피종 같은 인체에 심각한 질병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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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라 카즈오 감독에 따르면 일본사회에서 석면이 사회적인 문제로 떠오른 것은 2005년이다. 2005년 여름, 대규모의 기계제조업체인 쿠보타(Kubota)회사에서 자신의 회사에 근무한 노동자들이 석면 때문에 생길 수 있는 여러 질병으로 사망한 사망자의 숫자를 공개하면서 일본사회에서는 일명 “쿠보타 쇼크”가 있었다. ‘쿠보타 쇼크’이후 오사카 남부 센난지역의 크고 작은 석면공장에서 일했던 노동자들과 그의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하면서 8년 반 동안의 지난한 소송과정을 다루고 있는 영화가 바로 <센난 석면 피해배상소송>이다. <극사적 에로스 極私的エロス·戀歌>(1974), <가자 가자, 신군 ゆきゆき, 神軍>(1986) 등의 다큐멘터리 영화로 우리에게 항상 강한 충격을 주었던 하라 카즈오 감독의 신작이 <센난 석면 피해 배상소송ニッポン国 vs 泉南石綿村>(2017)이다. 감독이 10년에 걸쳐 만들었다는 이 영화는 러닝타임이 3시간 30분을 넘기는 호흡이 긴 영화다. 하지만 결코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영화는 당시 센난지역 석면공장에서 근무했던 피해자들을 하나하나 찾아가며 그들의 사연을 소개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일제시대 징병 온 조선인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석면공장에 취직하는 것 밖에 없었다는 자이니치의 사연도 있고, 일본의 산간벽지에서 태어나 대도시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부러워 친구따라 공장에 왔다는 일본인도 있으며, 공장에 일하러가는 부모를 따라 석면공장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는 사람도 있다. 또한 집안의 가업이었기 때문에 형제들과 함께 석면공장에서 일했다는 일본인도 있다. 그래서 직접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면서 병을 얻은 피해자도 있고, 공장에 일하러가는 부모를 따라 공장주변에서 놀았던 것이 병의 원인이 된 피해자도 있으며, 공장 근처에 농사 지으며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병에 걸려 고생하는 피해자도 있다. 또한 가내 수공업으로 온 가족이 석면공장을 운영하면서 형제, 부모, 친척들 등 6명이 병으로 숨진 피해자도 있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 아픈 것은 2~3년이면 끝날 줄 알았던 재판이 국가의 거듭된 항소로 인해 8년이 넘는 긴 소송시간이 걸리자 피해자들이 하나 둘 화면 속에서 사라져간다는 것이다. 

 

   센난지역은 한 때 60여개가 넘는 크고 작은 업체가 공장을 가동할 정도로 많은 공장들이 밀집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근무한 노동자들은 대부분 일본 산간벽지 시골에서 대도시 오사카로 온 가난한 지역의 젊은이들이었다. 많이 배우지도 못하고 가난했던 그들은 다른 선택지 없이 석면공장에서 근무 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석면공장에서 일했던 노동자들 중에서는 재일조선인들도 많았다고 한다. 산업현장에서 석면의 수요는 많았고 일을 할 노동력은 부족했으므로 학력도, 출신도, 성별도 따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일본으로 건너간 재일조선인들이 그나마 손쉽게 취직을 할 수 있는 곳이 석면공장이었다. 결국 일본사회에서 가장 약자들인 이들이 석면의 직접적인 피해자였으며 이 피해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숨쉬기가 힘들어 산소호흡기가 없으면 외출은 꿈도 못 꾸고, 폐암으로 아픈 딸이 역시 폐암으로 고생하는 노모를 돌봐야하는 이들의 고통은 어디서 연유한 것일까. 하라 카즈오 감독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하는 것은 이 고통이 단순히 석면에 대한 무지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라 “고도 경제성장 발전”이라는 미명아래 국가의 방관과 은폐 속에 이루어진 비극이라는 점이다. 일본정부는 2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석면피해에 대한 위험성을 알고 있었지만 석면의 경제적 가치 때문에 그 위험성을 묵인했다. 영화에서 피해배상 소송은 1진과 2진 두 팀으로 나뉘어서 소송이 진행된다. 먼저 소송을 한 1진은 1심에서는 이겼지만 2심에서는 패소한다. 그 근거가 국가의 고도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국가가 기업을 과도하게 규제를 안 해도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가 피해자들에게 배상할 책임이 없다라는 것이 법원의 판결이다. 국가의 경제발전을 위해 소수 약자들의 피해는 불가피하다는 말이다. 교묘하게 배상책임을 회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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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에서 눈여겨 볼 것은 국가가 피해자들을 대하는 방식이다. 일본 정부는 자신들의 잘못을 시인하기를 거부한다. 오사카 지방법원에서 석면피해자인 원고들이 승소를 하지만 곧 일본 정부는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고 항소를 한다. 2심 고등법원에서도 원고들이 이겼지만 정부는 계속 항소를 하여 결국 3심 대법원의 판결이 있고 나서야 비로소 마지못해 피해자들에게 사과 하고 배상 결정을 내린다. 하지만 여전히 국가는 자신의 책임을 절반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법원이 배상의 기준과 범위를 한정함으로써 배상의 범주에 들지 못해 결국 보상을 받지 못한 피해자들도 있기 때문이다. 즉, 보상의 범위를 1958년부터 1971년까지 센난 지역의 석면공장에서 일했던 노동자들로 한정을 했기 때문이다. 1972년 이후 근무한 노동자들과 공장에서 직접근무하지 않았던 피해자들은 보상에서 제외 됐다. 1971년에 '특정화학물질 장애예방규칙'이 제정되어 이후에는 국가가 나름 노력을 하였다는 것이 그 이유다.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지키지 못한 것도 모자라 오히려 1971년 이라는 한계선을 만들어 피해자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을 그어놓은 것이다. 

 

   영화 속에서는 센난지역 석면피해자들은 석면문제를 자신들만의 문제로 한정하지 않는다. 한국으로 건너간 석면공장들이 어떻게 한국인들에게 피해를 주었는지를 추적한다. 나아가 그들 석면피해자들은 한국의 석면피해자들과 연대를 맺는다. 한국이 석면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것은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 강점기 석면광산에서부터 시작된다. 한국에서는 1930년대부터 일제가 군수산업에 기여할 목적으로 전국에 여러 곳의 석면광산을 운영해 석면을 채굴하고 전량을 일본으로 가져갔다고한다. 그 여러 곳 중의 하나로 영화 속에서는 “광천석면광산”이 등장한다. 일제 강점기 일본인에 의해 운영된 이 광산은 해방 후에는 한국인에 의해 운영되면서 1980년대까지 석면채굴이 계속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채굴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만 위험표지판만 덩그러니 세워져 있고 석면이 공기 중에 그대로 노출된 채로 방치되어있다. 식민지 시대의 유산이 여전히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석면 산업은 1970년대에 들어 다시 한 번 더 한국에 영향을 준다. 1971년 이후 석면의 위험성을 인지한 일본정부와 업자들은 센난지역의 기계와 설비들을 해외로 이전시킨다. 석면문제의 원인이 되는 공장을 해외로 이주시켜 국내에서의 피해를 줄이자는 것이다. 이 때 지리적으로 가까운 한국으로 일본의 이 석면공장들이 들어왔다. 부산항을 통해 기술이전이라는 명목으로 기계와 설비가 부산으로 들어온 것이다. 당시 부산에는 1969년에 설립된 제일화학이 석면사, 석면포, 석면테이프, 석면로프 등 석면제품을 생산하고 있었다. 이 제일화학은 1971년부터 일본의 대표적인 석면기업인 ‘니치아스’와 손잡고 아시아 최대의 합작회사를 만들어 석면제품을 일본으로 수출했다. 말이 수출이지 일본의 공해시설인 석면공장을 한국으로 가져와 한국에서 석면제품을 생산하고 그 결과물을 일본으로 가져 간 것이다. 

 

   국가산업발전이라는 명목 하에 국가는 소수의 국민들에게 희생을 강요한다. 이러한 희생의 강요는 자국민에게 한정 된 것이 아니라 때로는 경제적으로 열악한 이웃나라에도 영향을 준다. 부산에 들여왔던 석면기계설비는 1990년~1992년 사이에 역시 기술이전의 명목으로 인도네시아로 이전되었다. 가까운 시일 안에 인도네시아에서도 석면으로 인한 피해가 가시화 될 것이다. 위험한 석면공장에서 일할 수밖에 없었던 많은 일본과 한국의 석면노동자들, 그리고 여전히 가동되는 공장에서 오늘도 일하고 있을 인도네시아의 석면 노동자들은 국가의 폭력을 여전히 자신의 몸에 새기고 있는 것이다.






  

작성일 : 2017.10.24
저자 소개  

임회록
문화 칼럼니스트.
영화, 드라마, 소설 등 이야기로 된 것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보는 편이지만 특히 범죄서사물을 즐겨 본다. 최근에 쓴 글로는 "'달맞이 언덕'의 하드보일드 잔혹서사", "말하기 시작하는 몸" 등이 있다. fox_10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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