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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문화 다 인터뷰] ‘공간’ 다큐멘터리 감독, 오민욱에게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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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공간 그리고 시간에 대한 끈질긴 사유


오민욱(영화감독), 박인호(영화평론가)

 

 

※ 오민욱은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이다. 2015년 41회 서울독립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비롯해 2014년 제14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 최고구애상, 2013년 제15회 메이드인부산독립영화제 우수상, 2013년 제13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 글로컬 대안영화상 등을 수상하며 부산뿐 아니라 전국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그가 연출한 작품으로 <상>(2012), <재>(2013) <범전>(2015)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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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재>는 부산의 전포동, 황령산 기슭에 오랜 시간을 버티고 서있는 암석군을 비춘다. 오랜 시간 인간은 물, 모래, 자갈 그리고 양회(洋灰)가 반죽된 콘크리트와 함께 현대문명의 황금기에 접어듦을 확인했다. 생성과 폐허의 시공간을 선사한 이 문명은 도시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물질적이고 심리적인 이미지들을 쏟아 낸다. 영화 <재>는 이에 대해 말한다.


박인호 : 많이 바쁠 텐데 인터뷰에 응해주어 고맙다. 먼저 내가 알기로는 부산에서 활동하는 감독 중 오민욱 감독의 영화만이 극장 상영과 전시의 방식으로  영화 작업을 한 걸로 알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전시와 상영의 차이를 듣고 싶다.


오민욱 : 박인호 선생님과는 사적인 자리에서 자주 뵙고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데 이런 자리에서 뵈니 특별한 느낌이다. 많은 감독님들이 계신데 내게 인터뷰를 요청해주어 고맙다. 질문에 답을 하자면… 나는 영화를 찍고 나서 전시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재>를 본 사람들이 이 영화는 극장에서 보면 좀 힘들지 않느냐는 말을 했었다. 내 영화에는 서사가 드러나지 않고 특정한 인물도 등장하지 않는다. 카메라도 거의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극장에서 보기 편한 영화는 아니다. 그렇다면 ‘전시’를 병행해서 작업을 하냐는 질문이 많았다.

 

   당시 나는 설치 작업은 생소했다. 특히 한국에서는 설치 작업은 미술 영역이기도 하니까. 영화가 어떻게 설치로 이어질 수 있는지에 대한 가능성을 생각하게 됐다. 스크리닝과 설치를 나눠서 생각하고 찍은 것은 아니다. <범전>의 경우 단편 버전을 거의 다 완성했을 때, 미술을 베이스로 한 영상 관련 작가들과 교류하게 되었다. 그들이 그룹 전시를 하는데 미군 부대(부산 하야리야 부대)를 없애고 만든 시민공원의 갤러리에서 전시를 한다고 하더라. 그들이 먼저 함께 전시를 하자고 권유했고 배운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그런데 전시는 영화를 만드는 것과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더라. 먼저 공간이 문제였다. 사람들이 내 작업(영화)을 봐야 하는데 다른 작품들이 옆에서 틀어지고 있고, 사진이나 다른 상도 혼재되어 있었다. 


   개인적으로 당황했던 점은 디스플레이를 할 때 담당하시는 분께서 작업을 빔프로젝트로 틀 것인지, LED TV로 틀 건지 물어보더라는 것이다. 40인치 사이즈의 벽걸이 TV를 설치했는데 처음에는 정말 이상했다. 벽면과 딱 붙어 있는 스크린과 달리 TV가 하나가 툭 튀어나와 있는데, 그 TV 안에 또 검은색 테두리가 있고, TV의 브라운관 질감이랑 스크린의 질감이 전혀 달랐다. 사전에 전시 환경에 대해서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 결국 전시 형식으로 작업을 보여줄 때 스크리닝이라는 보여주기 방식이라는 굉장히 다른 감각에 마주하게 된다는 것을 경험했다.


박인호 :  단편 영화의 전시 이후에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었나?
       
오민욱 :  그때 <범전> 촬영을 하고 있었는데 편집을 끝내고 1월에 보충 촬영을 갔더니 신기하게 그 동네가 없어졌다. 12월말에 공사를 조금씩 하고 있던 동네가 없어지고 영화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언덕이 하나 만들어져 있었다. 낮이나 밤에 매주 갔던 곳에 기차가 지나가던 마을이 없어져버린, 그 언덕 자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낡은 공간이 경주에 있는 능처럼 다져져 있는데 미묘한 차이는 사람들이 살던 곳이니까  전기선이나 전신주를 빼고 능 모양으로 다져놨다. 이 공간은 없어져버린 곳인데, 편집실에 돌아와서 하는 일이 지금은 사라진 공간이 찍힌 파일들을 보면서 고르는 것이다.


   내가 그 공간에서 ‘찍는다’는 촬영행위를 빼면 아무 것도 남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 역사를 이야기하고 싶어서 영화를 찍지만 실질적으로 진행되는 시간이나 역사가 사라지는 것에 대해서는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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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범전동. 조용하게 비가 내리는 가운데 민방위 훈련을 알리는 익숙한 사이렌이 들려온다. 내리던 비가 그치면서 날이 개이고 바람이 느껴진다. 어디서 불어온 것인지 연하기만 한 그 바람은 ‘사라진 마을(돌출마을)’을 지나 ‘붉은 골목(300번지)’에 이르고 ‘굉음’으로 사라진다. (영화 <범전>의 한 장면)


박인호 :  그러니까 현재 촬영하는 시간과 편집하는 시간의 흐름 사이에서 이미 사라져버린 공간이 발생했을 때의 문제인가? 촬영과 완성의 간극이 따라잡지 못하는 현상이 발생했을 때의 무력감과 비슷한 것 같다.


오민욱 :  조금 냉정하게 보면 내 영화는 한 게 아무 것도 없더라. 나는 가서 그냥 찍어오고 찍은 것을 고르고 붙이는 과정에서 이 리듬이 괜찮은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뿐이 없다. 첫 번째 전시 후 실패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렇다면 없어진 공간을 다시 한 번 더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영화와는 다른 시도를 해보고 싶은 마음에 제대로 된 전시를 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부산의 영상 미술 관련 작가들은 기록적인 것보다 소위 말하는 비디오 아트 계열로 나아가고 있다. 개념적인 성향이 강한 작품들 위주인데, 그때 들었던 생각이 미술에서 비디오를 이용하는 방법론과 영화가 비디오를 이용하는 방법의 차이가 크다는 것이다. 영화를 하는 입장에서 봤을 때, 미술관의 작품들이 비디오를 사용하고 있지만 전혀 영화적인 구석이 없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영화가 아니니까.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을 하던 차에 사진작업을 하는 친구를 우연히 만나게 됐다. 서로 이야기를 하다가 공간을 구해 전시를 하게 됐다.


박인호 :  전시 환경은 더 좋아진 셈이다. 집중해서 볼 수 있는 것 같다.


오민욱 :   물론 환경은 좋았고, 장비도 준비가 다 된 상태여서 영화를 어떻게 전시용으로 편집할 것인가 에 대해 충분히 고민 했다. 사람들이 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가지 않기 때문에 관람객이 슬쩍 보고 지나가도 느껴지는 게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영상을 통해 전달되어야 하기 때문에 인터뷰는 모두 삭제하고, 내가 이 영화랑 가장 닿아 있는 이미지들만 남기고 다시 편집을 했다. 영화의 리듬은 고민하지 않았다. 완성하니 33분의 러닝타임이 됐는데 전시 담당자는 그 시간도 길다고 하더라. 줄일 방법을 찾지 못했다.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테스트 하고 사진도 전시하고 조명과 동선까지 맞춰서 오픈했는데 그 공간에 들어와서 관람하는 방식을 보니까 생각했던 것과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사운드였다. 극장에서의 사운드는 스피커를 볼 수 없고 소리가 어디서 나오는지 모른 채 스크린에서 나는 소리라고 느낀다. 


   전시 공간에서는 스피커도 눈에 보이고 소리가 어디서 나는지 뻔하다. 빔으로 쏘는 방식도 다 보여주기 때문에 보는 사람과 지나가는 사람, 사람들 대화랑 바깥 소리랑 엄청 섞여서 들린다. 극장 스피커와 달리 그냥 소리들이 들린다. 편집하면서 컴퓨터로 듣는 소리랑 매한가지라서 범전의 눅눅한 느낌이나 쌓인 감정이 함께 전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소리들을 배치했고 화면을 쏘는 방향도 정했다. 이 영상을 보는 사람들이 그 공간에 들어서면 지금은 없어졌지만, 마치 그 골목을 실제로 가는 느낌이나, 전시장 밖으로 나갔을 때 그 느낌의 공간이 여기 있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개념을 가지고 구성했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1차적인 결론은 공간에 관한 다큐멘터리라고 부르는 것이 겉으로는 공간을 담아낸다고 하지만 실질적인 느낌이나 감각은 전혀 전달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보는 사람들은 이 영화의 의의를 그런 부분에서 찾기도 한다고 하지만, 내가 볼 땐 전혀 되지 않았다. 영화에서 불가능하거나 미진한 것을 전시에서 할 수 있을까, 영화를 만들면서 다른 방식들을 찾아야 할 것인가의 결론을 내릴 수는 없을 것 같다.   
      
박인호 :  이미 사라진 공간을 어떤 형태로건 복원하는 지점에 대한 얘기가 인상 깊다. 촬영현장에서 그것들을 계속 기록하고 가까이 있었던 이미지들이 어느 한순간 완전히 다른 형태로 바뀌어 있다면, 전에 찍었던 이미지와 지금 바뀐 것을 같이 붙잡아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촬영이 진행되는 시점에서 사라진 공간을 재현이라고 불러야 하나, 불러내는 것이라고 해야 하는가? 


   어떤 방식으로건 찍었던 것들을 편집을 통해서 재구성을 한 후에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것인데, 전시의 방식은 물리적인 면에서 생각하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기엔 영화보다 못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거꾸로 물어본다면, 촬영 행위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했는데, 그 촬영 행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상>의 근대역사관, <재>의 시민공원과 주변의 철거된 마을, <범전>의 동네는 우리가 알고 있는 곳이다. 관객이 그 공간을 어떻게 이해하는 게 감독의 영화를 가장 잘 이해하는 길이 될까? 무엇을 위해서 그 공간들을 담아냈는가?


오민욱 :   이 작품을 시작하게 된 동기랑 이어지는 질문 같다. 지금 할 이야기도 널렸는데 왜 그렇게 ‘개발’, ‘낡은 것’, ‘옛날 것’만 하려고 하는가라는 질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인 의미는 우리가 지금을 보면서 살고 있지만 지금이 지금만은 아니다. 과거의 언제부터 어디까지라는 범위를 정확하게 설정하기는 힘들지만, 지금이 있기 위해서 흘러온 시간의 과정을 보는 게 지금 살아가는 것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공허하게 미래만 잘 되면 된다고 되풀이 하지만 미래는 과거랑 비교 할 수 없을 만큼 불투명하다. 과거는 기록으로 남길 수 있고 볼 수 있고 말할 수 있는데 아직 경험하지 않은 미래의 시간들은 이야기할 수 없는 것들이다. 깔끔하지 않고 낡은 것들에 대해 더 이상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는 지금의 시대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시민공원 개장식 때 왜 정치인들이 항상 이 땅의 역사에 대해서 이야기 할까? 이 공간이 정치적인 언사로만 사용될 수밖에 없는가? 실질적으로는 아주 쉽게 부서지는 말들일 뿐인데… 갑작스레 주류 미디어에서 이 장소를 다루고 있는 이유는 시민공원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야리야 부대가 없어졌고 새로운 장소가 됐으니까 집중을 한다. 


   현재를 추켜세우기 위해 ‘여기 이런 공간 이었다’라고 과거를 소비 하는 방식으로 말하는 것이 불편하다. 그러면서도 '네 영화도 오랜 공간이 사라졌으니까 완성 된 것이 아니냐?’ 는 질문에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을 것 같다. ’지금‘을 위하여 과거를 부수기도 하고, 추켜세우기 위해서 과거를 정치적으로 대상화하는 행태를 벗어나 <범전>은 조금 다른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부가 아니라는 게 출발점이다.

 

박인호 :   어찌 되었건 이건 기록이다. 미래는 잘 모르겠지만, 과거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존재했던 공간과 시간이 누적된 시간의 기록이자 현재 이곳에서 과거에 덧입혀졌던 것들을 현재 기록하는 것이기도 하고, 기록하는 중에 그것들이 다 사라진다면 사라진 현재를 기록하는 것이라고 해보자. 나는 오민욱 감독이 실험의 의미나 시도보다 기록이 중심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의 기록영화, 특히 공간을 다루는 측면에서 본다면 이 기록에는 편집이라고 하는 것과 사운드를 어떤 방식으로 사용하느냐 라는 데서 다른 지점이 있다고 본다. 


   디졸브와 관련한 부분도 그렇다. 오 감독의 <1987061020080610>(이하 <1987>로 표기)에서 1987년 6월 10일을 전후로 한 기록사진(과거)이 실제 길거리(현재)와 겹쳐있고, 2008년의 기록(현재)과 기록사진(과거), 기록사진(과거)들이 계속 겹쳐진다. 이중인화 된 이미지들을 보면 예전에 이곳이 있었고 현재 이곳이 있다는 사실이 별개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방식을 첫 번째 영화에서부터 선택하게 된 지점이 남다르다고 느끼게 만들었던 것 같다. 


   첫 영화에서 시작한 방법이 <상> 에서는 포커스 이동으로 변한다. 우리가 볼 수 있는 사물의 전체가 아니라 그 일부분을 집중해서 보다가 어느 순간 포커스가 이동하면서 보는 시야 자체가 바뀐다. 그 기둥은 초반과 후반에 다시 등장하는데, 역사적으로 굳건하게 몇 십 년을 버티고 있었던 사물의 일부, 닳거나 깨지고 틈이 팬 어떤 일부를 보게 된다. 그때 ‘그 일부’를 어떻게 지각해야 될까? 현재는 현재대로 흐르고 과거는 과거대로 흐른다. 그들이 같이 겹쳐지는 것만 보더라도 오민욱 감독이 말한 ‘꼭 미래를 위한 과거가 아니라 과거가 지금이었을 때 그때 과거가 의미를 지니고 지금까지 이어진다’는 지속이나 연속성이 중요한 것인가?


오민욱 :   아무래도 과거, 현재, 미래는 지속이나 연결과 닿아있다. 대부분 관객들이 이 시제 들을 분절적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1987>을 만들면서 6월항쟁과 광우병 사태를 같은 선상에 놓고 보여주고 싶었다. 


   디졸브를 사용하게 된 것은 광주나 부마항쟁, 6월항쟁을 취재하셨던 기자님이 흔쾌히 자료를 주시면서 시작됐던 것 같다. 사진을 보면서 놀랬던 것은 이게 하나의 성스러운 유물 같은 역사의 조각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누구나 다 아는 장소였다. 그렇다면 이 사진 속 공간을 한번 찾아가보자, 그래서 찾기 시작했다. 사진을 단서로 찾아간 공간의 현재 모습을 사진의 구도와 최대한 일치하게 촬영 했고 이후 편집과정에서 두 이미지를 겹쳐 놓았다.


   항쟁이 일어났던 과거,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는 현재, 그리고 이 과거와 현재가 어떻게든 미래에 영향을 주기 위한 행동이라고 생각하면,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함께 놓여 지게 된다. 여러 공간의 이미지를 겹치는 방식은 <상>을 찍을 때도 이어진 부분이 있다. <상>에 담겨진 부산근대역사관은 과거 일제침략기와 미군정기를 거치면서 용도가 자연스레 바뀌었고 현재는 전시를 위한 역사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스스로의 역사를 전시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박물관이다.


박인호 :   박물관의 외부와 내부 모두 그렇다.


오민욱  :   그 지점을 맨 처음에 보여주고 싶어서 도면을 찾아 과거부터 바뀌지 않은 부분들을 학예사에게 물어봤지만 거의 다 바뀌었다. 불도 났었고. 그런데 외관이나 기둥은 원래 동양척식주식회사 때의 설계 그대로였다. 은행의 1층은 엄청 천장이 높지 않나. 원래 건물은 2층이었는데 미군이 문화관으로 사용하고 박물관으로 바꾸면서 원래 1층을 두 층으로 나눴더라. 그 기둥은 밑에서부터 시작해서 2층까지 이어진 거다. 다른 구조물을 찾을 수 없어서 그 기둥에 초점을 맞춰서 작업을 변경했다.

 

   영화의 기본적인 것들만 가지고 싸우는 영화들을 보니까 얼마나 짧게 보여줄 것인지/길게 보여줄 것인지, 포커스가 어떻게 바뀌는 것인지/노출의 여부는 어떤지. 이러한 요소들을 통해서 이루어진 영화들에 당시 관심이 있었고 작업으로 이어졌다.


박인호 :   <재>의 첫 쇼트가 하늘이고 다음 쇼트가 바위다. 바위의 표면이 변하는 방법도 <상>의 기둥에서 조금 더 나아간 형태 같은데 기둥과 달리 아무리 봐도 어떻게 찍은 건지 감을 잡을 수 없더라. 바위 표면에 틈도 벌어졌다가 모양도 바뀌고, 전혀 변하지 않나 싶은데 어느 순간 바뀌어 있고. 어떤 과정으로 찍었거나 편집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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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고 조형의 세부를 찍은 추상 이미지, 역사적 사건을 기록한 뉴스릴, 난무하는 구호들. 영화 <상>은 말과 이미지, 텍스트, 사운드가 나뉜 트랙 위에 뿌려지는 영화이다. 정치적 함의보다 표현 방식에 따라 변이되는 시청각 이미지의 활동성을 체험케 한다.

 

 오민욱 :   두 편 모두 보는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서 찍은 것이다. 보이는 것을 극대화해야 되는데, 내가 찍을 때 이걸 먼저 이렇게 해야지 라는 생각을 먼저 하진 않았다. 분명히 영화를 볼 때는 포커스 이동인데 촬영은 그렇지 않다. 바위를 찍으면서 포커스를 이동한 건 아니다. 


박인호 :  촬영이 아니면, 편집에서 첨가된 것인가? 바위는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시간 감각은 아니지 않은가?


오민욱 :   아무리 잘 찍는 카메라 감독이 찍어도 원체 심도가 얕기 때문에 그런 느낌은  들지 않을 것이다. 나는 포커스를 바꿔서 두 개를 찍고 쇼트들을 중첩시켰다. 엄밀히 말하면 바위는 디졸브다. 보는 사람 대부분이 포커스 이동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사실 이건 디졸브입니다”라고 말할 필요가 없었다.


박인호 :   <재>의 바위를 틀어놓고 보면 언제, 어떤 식으로 바뀌었는지 지각하기 힘든데, 이걸 컴퓨터로 끊어서 보면 절단면이나 접합면이 보이더라. 몇 번을 반복해서 보니까 이게 온전히 카메라 렌즈를 통한 것이 아니라 물리적인 변형이나 편집에서의 뭔가가 계속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민욱 :   관객들이 시각적으로 신기하다고 해서 그렇게 장면을 구성해버리면 나는 더 이상 영화를 만들면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 장면은 구상반려암을 보고나서 시작된 거다. 계속 때려 부수고 지어 올리는 공사 현장만 찾아다니는 것에 스스로 정체되어 있던 때였다. 이 영화는 부산이라는 도시의 이야긴데 부산에서 진짜 오래된 곳, 기원 같은 공간이 어딘가 찾다보니까 전 세계에서 몇 군데 없는 암석군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백악기 때 생겼다고 하는데 설명만 읽어보면 엄청난 태초의 시간인데 어떻게 그 시간성을 표현할 수 있을까, 말을 하는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막막했다. 바위를 연기시킬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카메라를 들고 구상반려암을 찾았지만 사실 난감했다. 문화 해설사 할아버지가 따라오셔서 “학생이 왜 자꾸 이것을 찍으려고 하는가?”라고 물어보시길래 “부산에서 되게 오래된 곳이다”, “맞지 오래됐지. 옛날에 용암이 땅을 뚫고나가서 굳어진 거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암석군이 있는 산자락에서 하야리아 부대 자리가 내려다보였는데 밑에서는 한창 시멘트를 때려 붓고 있더라. 시멘트가 공기랑 반응해서 굳는 것처럼 구상반려암도 용암이 공기랑 만나서 굳은 형태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다면 바위의 특정 부위마다 공기와 접촉이 달랐을 것이고, 같은 돌 한 덩이더라도, 시간대에 따라 제각기 굳는 모양이 같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전체를 보여주기보다는 한 바위를 크레인으로 훑어서 찍으면 좋을 것 같았는데 현실적으로 경비 때문에 불가능했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 중첩을 해보자!


박인호 :  시민공원, 철거 된 아파트, 공사장, 크레인의 추가 높이 서 있는 것, 시멘트가 말라가는 것은 거의 바위에 난 구멍의 클로즈업이랑 거의 차이가 없더라. 반복된다는 사실이 발견되더라.


오민욱  :  편집을 할 때 카테고리를 정하려고 했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조금 풀어질 수밖에 없었다. 반복이라는 게 보기에 따라 게으르다는 말도 된다.


박인호  :  똑같은 것의 반복이 아니라, 계속 바뀌어 간다. 예를 들어 크레인은 계속 올라가는 기둥, 한 두 개가 높이 서 있는 것, 많이 등장하는 장면도 있다. 시민 공원은 일제강점기의 역사적 사실을 말할 때도 있고, 개장을 축하한다고 말할 때, 그림 그리기 대회의 주제에 대해 말하기도 한다. 공사장도 거대한 철근구조들, 기하학적이고 조형적으로 굉장히 아름다운 직선의 형태, 인부들이 철근 구조물 사이로 돌아다니기도 하고, 레미콘이 쏟아내는 시멘트 등 이런 식으로 일종의 단위가 계속 변형되어 나타난다. 단위를 이루는 대 여섯 개의 쇼트가 면이라고 할까? 블록처럼 구성되어 있다는 생각이다. 폐허가 된 아파트의 외벽을 보여주다가 어느 순간 카메라가 집 안에 들어가서 구조물을 보여주고 개인의 물품도 덩어리를 이뤄서 계속 반복. 변형되면서 점점 커지는 것 같다. 이질적인 것이거나 인접한 것들이 계속 만나면서 붙어간다.


오민욱 : 면에 대한 지적은 정확한 것 같다. 촬영할 때 보통 뭐든 찍으면 가까이 있고 멀리 있는 게 있기 때문에 뭔가 원근이 생기고 입체적이지 않나. 그 영화를 찍으면서 아주 쉽게 포기 했던 것은 3D로 못 찍기 때문에 평면이라고 생각하고 찍자고 일종의 포기를 했다. 한글 제목은 ‘재’고 영문 제목이 ‘Re’라고 붙어있는 것이, 이게 순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용암이 굳어져서 대지를 생성하고 그 위에 도시가 생겨났지만 현재 그 도시는 ‘시멘트라는 물질의 생태계’가 아닐까라는 그런 가정으로 영화가 편집이 됐다.


박인호 : 영화를 보면 더러운 폐수, 약간 부감에서 찍은 물 흘러가는 것과 고착화되어 있거나 이런 것들 사이에 나중에 보면 물 수면도 나온다. 그렇게 흘러가는 게 되게 느닷없이 등장했다고 해야 하나? 깨끗한 것도 아니고 폐수에 가까운 이 물들은 도대체 진행 중인 미래를 향해 맹렬하게 솟아나는 건물들 속에서 무슨 역할을 하는 건가?


오민욱 : 우연인지는 모르겠다. 강을 찍고 나서 들었던 생각은 이 폐수가 지금 이 영화에 도취되어있어서 그런 건지 잘 모르겠는데, 폐수가 좀 더 자연의 물 같았다. 그리고 낙동강의 한 지류인 맥도강의 표면이 그래픽 같고, 마치 콘크리트를 위에서 찍으면 철근이 조형적인 어떤 느낌을 주는 것처럼. 물살이 바람에 따라 바뀌면 이게 그래픽 같다. 그 인공적인 상태에서 또 다시 아주 인공적인 항공기가 그 하늘 위를 지나간다. 그리고 특정한 국면의 풍경이 발생한다. 폭발하고 충돌하고 전환 되는 리듬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다.


박인호 : ‘약간 뭔가 변하나?’ 생각했던 게 건설현장에서 줌을 당겨서 철근구조가 나오고 노동자들이 안전모를 쓰고 나오고 몽타주들이 쫙 연결된 게 나온다. 그러고 나서 강물도 나오고. 그 후에 여태까지 나온 쇼트들이 플리커라고 해야 하나? 짧은 쇼트들이 번쩍 번쩍 하면서 지나가잖아. 그러고 나서 한쪽에 디졸브되면서 안전모를 착용한 만화이미지가 등장을 하는데 만화이미지는 도대체 이게 나중에 인체모형의 폐로 변환이 돼서 인부로부터 시작해서 여기 왔다가 인체모형도로 가는 데 이 장면이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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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욱 : < 1987 > 찍으면서부터 습관이나 뭔가 그런 거일 수도 있는데. <상>을 만들 때도 푸티지를 썼었고 그러다보니까 <재> 찍으면서는 <상>에서 <재> 사이에서는 뭔가 이제 촬영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채집개념으로 생각을 했는데, 카메라가 아니어도 채집이 가능하니까. 그래서 < 재 > 에서도 그런 이미지들이 등장한다. 맨 처음에는 아파트 광고들을 손을 대기 시작했는데 너무나 잘 찍혀서 있어서 질감이 좀 안 맞고, (그래서 사용한)그 푸티지가 산업안전관리공단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재해를 예방하기 위해서 만드는 그런 영상인데 만화 치고는 너무 살벌했다. 해맑음과 그로테스크가 섞이는 느낌이었다.

 

박인호 : 영화를 제작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러니까, 그릇을 먼저 준비하고 내용물을 담는가? 아니면 내용물을 보고 그릇을 만드는 편인가?


오민욱 : 거의 동시적이지 않을까? 이걸 담아야 되는데 어떤 게 필요할까 이렇게. 그게 정하고 준비해놓고 찾고 그게 가능하려면 상업영화시스템에서 가능한 것 같다.


박인호 : 영화 <범전>의 경우는 쇼트는 쪼개었는데 쇼트가 잘 외워지지가 않더라. 나는 쇼트를 쪼개면서 영화를 분석하는 편인데, 오민욱 감독의 영화는 훨씬 복잡하더라. 왜 복잡할까? 구조영화의 후예이기 때문일까? 


오민욱 : 옛날에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내 영화는 실험영화가 아니다. 그렇게 분류되는 것은 독립영화들에도 주류적인 형태들이 나타나고 있어서인 것 같다. 그래서 내 작품이 툭 튀어나왔다고 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박인호 :  오민욱 감독 외에 부산에서 실험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또 있나? 


오민욱 :  좁게 생각하면 없다고 본다.


박인호 :  그러니까 이걸 어떻게 장을 만들어서 사람들과 어떤 얘기를 꺼내야 할지가 사실은 난감한 부분도 있다. 20년대 필름으로 만들어 낸 3분, 10분짜리 아방가르드 영화를 보고 있으면 너무 좋다. 이게 영화라고 하는 게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 않아가지고 영화가 해낼 수 있는 표현들 능력들 할 수 있는 것들을 이렇게 저렇게 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 옛날에 했던 거 보면 필름 표면 자체를 긁거나 그런 것을 제외하고 디지털이 할 수 있는 실험은 어떤 지속시간에 대한 부분들이 있다고 얘기를 했었고. 근데 그것만으로는 또 아닌 것 같다. 뭔가가 많은 것들이 비어있고 많은 것들이 이야기가 안 이루어져서 뭘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오민욱 : 저도 말로만 필름 디지털이지 별로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그냥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제임스 베닝 감독이 신기했던 건 필름으로 16mm로 고집해서 계속 찍었다는 거다. 2007년까지 말이다. 그 이후로 EX3카메라를 손에 넣으면서 롱테이크에 대한 신세계가 펼쳐진다. 그래서 두 시간 반짜리 영화가 있는데 쇼트가 딱 하나인거다. 어찌되었든 영화에 있어 시간에 관한 양상에 변화가 생기기는 한 것 같다.


박인호 : 그와 관련해서는 일단 책을 보고 공부를 좀 해서 이렇게 저렇게 찾아 가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장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어서 감사하다. 다음 영화를 기대하겠다.




 

작성일 : 2016.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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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욱(영화감독), 박인호(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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