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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문화 다〉 창간 5주년 기념 좌담] ‘유사 인문학(?)’ 열풍 현상을 진단한다 (1)

일시 : 2017년 10월

참석자 

사회 : 이성혁(문학평론가)
참석자 : 김혜연(소설가), 이수향(영화평론가), 이종찬(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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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성혁(사회자) : 안녕하세요? 웹진 <문화 다>가 창간 5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웹진 <문화 다>에서는 창간 기념일에 맞추어 좌담을 마련해왔습니다. 이번 5주년을 맞이하여 ‘유사 인문학’ 열풍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어보려고 합니다. 좌담에 참여하실 분들은 문화비평가이면서 작가, 그리고 동화에 대한 연구서도 내신 김혜연 님, 문화평론가이신 이종찬 님, 영화평론을 쓰시는 이수향 님입니다. 김혜연 님과 이수향 님은 문화다 편집동인이시고 이종찬님은 편집동인을 하시다가 요즘은 바쁘셔서 한 발 물러나 계십니다. 저는 편집 주간을 맡고 있는 이성혁입니다. 문학 평론을 하고 있고요. 제가 소개하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선생님들께서 문화다 독자 분들을 위해 자기소개를 직접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근황도 알려주시구요.


김혜연 : 안녕하세요? 저는 중앙대 문예창작학과에서 문학이론으로 박사학위 받고 작년에 아동문학 이론서 <동화, 영혼의 성장>을 출간했습니다. 웹진 문화다에서 3년 간 평론을 쓰면서 대중문화 비평서 <신데렐라 최진실, 신화의 탄생과 비극>과 <인간 신해철과 넥스트시티>를 공저했습니다. 올초 <어린이책 이야기>와 <21세기 문학>에서 각각 청소년소설과 소설로 등단했고요. 동인 여러분 반갑습니다.


이수향 : 안녕하세요. 영화평론가 이수향입니다. 저는 공부도 하고 영화도 보고 강의도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이종찬 : 문화평론가 이종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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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자 : 좌담 주제로 넘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 사회에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다는 말을 많이 들으셨을 겁니다. 인문학 개론서가 수십만 부씩 팔리고 있는 현상만 보더라도 괜한 말은 아닌 듯합니다. 물론 몇 권에 한정된 일이지만이요. 저도 인문학계에 종사한다면 종사하는 사람이기에 이러한 인문학 열풍 현상이 싫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과연 독서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한국인들에게 인문학 열풍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어볼 단계에 와 있는 것 같긴 합니다. 인문학 도서라든지 인문학 방송 등 인문학 콘텐츠가 쏟아지고 있지만 과연 우리 문화가 인문학적으로 변화되고 있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젠 인문학 열풍 현상의 이면은 무엇인지, 그리고 소비되고 있는 콘텐츠의 내용은 어떤 것인지 따져봐야 할 시간인 것 같습니다. 과연 지금 유통되고 있는 인문학이 과연 인문학이 지니는 의의에 비추어 합당한 것인가 평가해볼 필요가 있구요.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인문학 열풍에 대해서 선생님들께서는 어떻게 파악하고 계신지 말을 듣고 싶습니다. 우리 좌담 주제를 제안해주시고 현재 인문학 열풍 ‘현상’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유사 인문학’이라는 개념을 제시해주신 김혜연 선생님께서 먼저 발언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김혜연 :  ‘유사 인문학’은 개념이라기보단 현재 일어나는 현상에 붙여본 이름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일단 이름이 있어야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까요. 지금 ‘유사 인문학’ 현상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되는데요.


   첫 번째는 학문 분류체계상 인문학이 아닌 콘텐츠가 인문학으로 소개되는 것이에요. 사회과학이나 경제학, 인류학, 종교, 마음 다스림을 다룬 실용서 등이 인문학으로 소개되요. 인류학은 상당히 인문학적이긴 하지만 사회학으로 들어가니까요. 저자가 인문학자가 아닌 방송작가나 마케팅 기획자인 경우도 있고요.


   두 번째는 학자이긴 한데 본인 전공분야가 인문학이 아니에요. 예를 들어 강신주 박사는 철학자인데 자꾸 문학비평서를 내요. 사실 자기 전공분야 말고 다른 분야에 책을 내고 강의를 하려면 최소한 5년 정도 공부를 하고 논문을 두어 편 정도 내어야 대중 앞에 나설 수 있지 않나 싶구요.


   세 번째는 학위도 없고 학자도 아니고 그 분야를 공부한 사람도 아닌 경우에요. 최진기 씨, 설민석 씨, 채사장 씨 등 지금 유명한 강사들이 대표적인 경우죠. 지금 최진기 씨가 한겨레에서 시작한 강의가 <영화로 보는 인문학>이에요. 영화 평론가 선생님들이 오셨기 때문에 생각을 들어 보고 싶구요. 최진기 씨는 경제학이라는 자기 분야가 있는데도 인문학 강의를 하다가 오류가 많이 발생되어 공개 사과도 한 사람이지요. 이러한 분들은 학문의 깊이보다는 학원 등지에서 강의하는 화술이나 강의력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지요.


   네 번째로 지역 사회에서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하는 인문학 강좌인데 일부 강좌들은 수준이 너무 낮고 오류가 많아요. 독서지도나 인성지도, 지역 탐방 프로그램 등이 인문학이라고 제목을 달고 나오는 것들이 있구요. 홍보물에 강사 이름도 안 나오고요. 옛날 학설을 그대로 주장하는 경우도 있고요. 인문학이라고 콘텐츠가 몇백 년 동안 계속 똑같은 게 아니거든요. 역사학 계통 학설은 의외로 빨리 바뀌어요. 새로운 발굴이 계속 이뤄지고 문서 공개가 되기 때문에요. 그런데 일부 지역 강좌를 들어보면 폐기된 옛날 학설을 기반으로 강의를 하는 경우들을 좀 봤습니다. 강사들도 검증이 안 된 사람들이 있구요.


   제가 유사 인문학이라는 말을 좌담 진행하면서 만들어냈는데, 인문학이 대학에서 설 자리를 잃고 시장으로 나오면서 생긴 현상이라고 봐요. 대중들이 인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제 경험으론 한 5년 정도 된 거 같아요. 인문학 콘텐츠가 티비로까지 진출한 건 1년 내외인 듯하구요. 양적 팽창이 됐는데 제대로 공부하신 분들이 설 자리가 없는 듯해 안타깝습니다. 우려와 기대가 섞인 상태입니다.


사회자 : 제가 이야기를 첨가한다는 게 좀 그렇긴 한데, 스타가 독점하는 구조인 거죠. 최진기 선생님 그런 분들이 어떤 분야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정리를 한다고 그럴까요, 정리한 것을 화술을 통해서 대중적으로 알리는 그런 방식으로 인문학 대중화를 독점한다는 현상이라고 봐도 되는 걸까요.


이종찬 :  ‘유사 인문학’이라는 개념을 제기해주셨는데 시의적절하고 동시대적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어요. 아주 기본적인 질문입니다. ‘인문학’의 범위는 어디까지인 걸까요? 보통 학문의 영역에서 크게 자연과학과 인문과학, 두 가지를 대별해서 이야기하는데 오늘 우리가 이야기하려는 ‘인문학’은 어떤 인문학인 것인지부터 함께 짚고 넘어가면 좋겠습니다.


사회자 : 사회과학적 문제도 인문학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잖아요. 그런 문제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그런 문제도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혜연 - 제가 오늘 가져온 주제에서 말씀드리는 인문학은 일단 문사철이예요. 문학, 역사, 철학. 그리고 사회과학은 기본적으로 숫자 기반이거든요. 사회과학이 통계에서 나타나는 숫자들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인문학의 성과를 빌어서 풀어나가는 경우는 있어요. 대표적으로 푸코. 하지만 사회과학과 인문학은 엄연히 다른 분야라고 생각이 되고요. 그리고 예술은 문사철과 독립적인 영역을 갖고 있으면서도 동급인 분야라고 생각하고요. 여기서 제가 말씀드리는 인문학은 문학, 역사, 철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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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향 : 저도 요새 여기저기에서 인문학이 잘 팔리는 것처럼 보이더라구요. 제가 엊그제 서점을 가보니 인문학이라는 용어를 달고 있는 책이 굉장히 많았는데 문제는 그 책을 쓰신 분들이 지금 정확하게 지적해 주신 대로 인문학과 관련된 전공을 하지 않은 분들이 대부분인 거예요. 심지어는 관련 학계에 조금이라도 몸 담았던 경험이 없으신 분들도 계시구요. 인문학이라는 용어가 굉장히 되게 수준 높은 교양처럼 아니면 융복합시대의 어떤 미래를 제시해 줄 만한 용어인 것처럼 막 떠돌아다니고 있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은 여전히 실체는 굉장히 모호하다라는 데에는 저도 동의를 합니다.
 
   다만 제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인문학이라는 것이 두 계의 층위로-물론 그것을 단순히 높고 낮음으로 단순하게 평가하긴 어렵지만- 나눠져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저희처럼 학문의 분과 내에서의 차원 즉 아카데믹한 차원이 있고, 또 반대로 일반 대중 지성의 차원에서 움직이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인문학은 한 번도 대중 지성의 차원에서 주류의 자리에 서 본 적이 없었던 영역이었었죠. 다만 지난 세기 한국에서 어떤 역사의 문제적 국면들 그러니까 군사독재 심해지거나 하던 시절에 소위 엘리트주의적인 학문이나 아카데믹한 영역에서의 인문학이 발언권을 얻고 그게 굉장히 크게 추앙받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근데 현실적으로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고, 지금 대중의 힘이 몇 몇 엘리트주의를 이끌어가는 그 힘들과 굉장히 따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또 다른 의미에서 최근의 학문 분과의 문제나 학문의 통폐합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결론적으로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우선은 이 인문학 열풍이라는 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은 하나 그것이 근본적으로 전공자인 우리가 겪고 있는 인문학의 위기와는 다른 차원의 것이다라는 거지요. 이 대중적인 차원에서 얘기가 되고 있는 이 유사 인문학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학제적 차원과는 따로 놓고 얘기를 하고 그 자체가 괜찮으냐 아니면 문제가 있느냐를 봐야한다 저는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사회자 : 유사인문학 현상과 인문학의 위기, 이 두 문제를 나눠서 생각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이종찬 : 1. 한쪽에선 인문학이 융성, 범람하고 있다고 말하는 반면 또 다른 한편에서는 죽어가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상이한 판단을 하는 각각의 주체가 누구인지 궁금합니다. 가령 인문학의 종언을 이야기하는 주체는 누구일까요? 인문학 관련 학과 교수들이나 연구 주체들이 이런 종언 담론을 시종일관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 관성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은 무언가 적잖이 의미심장해 보입니다. 인문학의 위기와 관련하여 정작 이들 대학이나 제도 안에 있는 주체들의 책임은 없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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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연 : 저도 99학번인데, 당시 대학에서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많이 나왔어요. 희한한 게 그때 인문학으로 예산이 많이 들어왔어요. HK니 인문한국이니, 연구소로 예산이 굉장히 들어왔지요. 10억 단위로 집행된 경우도 있었던 것 같구요. 저는 ‘유사 인문학’이란 결국 ‘인문학의 위기’의 결과물이라고 봐요. 그 수많은 지원에도 불구하고 인문학이 대학에서 쫓겨나서 시장으로 왔다고 보거든요. 그래서 지금 나타나는 게 유사 인문학이고, ‘시장의 인문학’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 시장에서 학원 강사로 이름을 떨친 사람들이 득세를 하게 된 것이죠. 원래 학원 강사들이 딱딱 정리해서 입 속에 넣어주길 잘하잖아요. 그런데 공부를 제대로 한 학자들은 그런 걸 잘 못하거든요.

 

   얼마 전에 지역에 제대로 공부를 하신 인문학자 한 분이 오셔서 대중 상대로 강의를 하셨는데 너무 강의를 못했어요. 대학, 학생 대상 강의와 대중 상대 강의는 다르거든요. 학생 상대로는 내가 말하는 게 맞으니까 너희들은 배우면 돼, 라고 할 수 있지만 대중 상대로는 그러면 안 되니까요. 대중들의 삶에서 접점을 찾아내는 게 구체적으로 풀어주는 게 먼저예요. 저는 그날 강의를 들으면서 학원 강사들이 인문학 강의하는 이유가 있긴 하구나 싶었어요. 어쨌거나 알아듣게는 하거든요. 가령 <지대넓얕> 같은 책을 보면 철학은 무슨 주의, 무슨 주의가 있고 이거만 외우면 돼, 라고 하거든요. 그렇게 대학 학부에서 강의했다간...(좌중 웃음) 모 방송작가가 쓴 인문학 책이라는 것도 목차를 보면 와 정말 이건 안되겠다 소리가 절로 나와요. 이게 인문학이라고 대중들에게 오인되면 큰일나겠다 싶어요. 이런 실태지만, 한편 대중들도 지혜가 있기 때문에 나름 잘 걸러내는 측면도 분명 있습니다.


   시장으로 나온 인문학 콘텐츠를 하나씩 검증할 시점이 왔다고 봅니다. 학문의 정규 과정의 장점이란 게, 그 코스를 따라 쭉 걸으면 학문적으로 큰 실수는 안 하게 되거든요. 그런데 학문의 정규 과정을 밟지 않고 혼자 공부하다 자칫하면 치우친 관점을 가질 수 있어요. 학문은 균형이잖아요. 인문학은 다양한 가치와 관점을 갖게 하는 게 장점인데 혼자 공부하다보면 그래 이게 답이야!라고 주화입마 들어가게 될 수도 있거든요. 혼자 철학서 파다가 결론은 역시 맑스야 식으로.(웃음) 그런데 정규 과정을 밟으면 선생이 치우침을 막아줘요. 다양하게 이것저것 보라고 잡아줘요.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공부한 사람들이 가르쳐야 한다고 보는 거예요.


   한 가지 제안을 하자면 학회 차원에서 인문학 비전공자의 대중 상대 강의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게 의미있다고 봐요. 비전공자는 공부가 충분히 되기 전에는 강의 등을 자제해야 한다는 등, 사회적 어필도 필요할 수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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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찬 : 진입장벽을 만드는 기준이 문제가 되지는 않을까요? 자기 전문 분야의 ‘게이트 키퍼’로 전락해버릴 수도 있겠다는 위험성도 느껴져서요. 다수가 합의하고 고개를 끄덕일 만한 하나의 객관적, 보편적 기준을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가 관건인 것 같아요. 현재 시장에서 인문학을 나름의 방식으로 전유하고 있는데, 물론 이 방식을 옹호하고 정당화하자는 말은 아니라, 언제고 일어나는 상황인데 혹시 그것에 너무 크게 의미부여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공략하기보다 차라리 낙후시키는 것이 효과적인 접근방식이 아닐까 싶네요.

 

   대중의 언어로 자신의 강의 내용을 번역해내는 전달 능력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눈앞에 있는 강의 수용자 층에 따라 적절한 언어로 번역해내는 능력 말입니다. 단순히 ‘대중이 무식하다’ 류의 정신승리 태도는 삼가야할 뿐 아니라 위험하다고 봐요. 이 전달 능력, 번역 능력이야말로 오히려 강의자의 필수 자격요건이어야 한다고도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현재 한국에서 ‘중간 지식인’, ‘중간 저자’의 존재가 눈에 띄지 않거나, 없거나, 아니면 분명히 존재하는데도 발굴되지 못하거나 하는 것 같아요. 그게 참 안타까워요. 넓은 의미의 ‘에세이스트’가 없어요. 가벼운 ‘경수필’이 아니라 나름의 크리티컬한 눈으로 세계와 현상을 통찰력 있게 읽어낼 수 있는 비평적 에세이스트의 존재가 많지 않다는 점이 많이 개인적으로 가장 아쉽습니다.


이수향 :  저는 이 부분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비판받을만한 부분이 많이 있다고 보는데, 제일 문제인 것은 이런 유사 인문학을 전달하는 주체들이 학원강사분들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뭔가 깊이 있는 지식의 전달이 목적이 아니라 전달능력자체를 매우 인정을 받아서 그 사람이 무엇을 전달해도 상관없는 사람일 때 이게 굉장히 대중에게 잘 팔리게 되죠.
 
   재미있는 게 이것이 최근의 영화 평론 시장의 담론화 경향과 너무 비슷해요 무슨 말이냐하면 문학은 뭐랄까 진입장벽이 높잖아요. 어렵기도 하고 많이들 안보기도하고 순문학의 경우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내가 손 댈 수 없는 세계야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는 데에 반해 영화는 훨씬 더 가벼운 진입장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접근하고 대중적인 블로그나 팟캐스트 등 여러 가지로 많이 진입하게 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영화평론이라는 분야는 굉장히 위축되고 있는 편인데, 위축되는 이유의 핵심은 이제는 더 이상 기존에 해왔던 글쓰기 혹은 활자화된 매체로 텍스트를 구성하는 방식이 별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거예요 대중의 차원에서 특히나 그렇죠. 그러한 기회들-지면들이 굉장히 적어지니까 이제 말로 하는 영화 담론의 전달 방법이 굉장히 중요한 일이 되고, 결정적으로 영화평론 잡지 같은 것들이 다 없어지면서 지금 실제적인 영화에 대한 발언을 할 수 있는 것들이 GV같은 형식이예요. GV는 초대손님을 불러서 영화를 같이 보고 모더레이터로 얘기되는 사회자가 이야기를 나누고 이러는 구조죠. 요새 저희에게 들어오는 일들은 그런 일들이 많고 직접 본격적이고 진지한 차원의 영화 장평을 쓸 일은 별로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글을 쓰는 것보다는 말로 뭔가를 대중에게 전달해라라는 요구가 많아지다보니 전문적인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길고 밀도 있는 수준으로 쓸 수 있느냐라는 능력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이 사람이 말을 잘하느냐 더불어 그 사람 자체가 흥행성을 가지고 있는, 그러니까 대중적 인지도가 있는 인물이냐라는 것이죠.

 

   그래서 요사이 많이 얘기되는 인문학 강사들인 최진기, 조승연, 설민석 이런 분들도 당연히 나름대로 공부도 하셔야 강연이 가능하겠지만, 실제로 이분들에게 더 중요한 건 대중적인 매체인 텔레비전의 예능이나 교양 프로그램 같은 곳에 나가서 자기 자신을 잘 콘텐츠화 시키는 능력인 거예요. 이렇게 이 사람이 유명인이 되면 영화 평론가 역할도 할 수 있고 문화평론가 역할도 할 수 있고 대학이나 기업체 등에 나가서 강연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어쨌거나 담론 생성의 판도가 바뀌는 상황이 분명히 진행되고 있고, 그런 데서 대중이 요구하거나 실질적으로 돈을 줄 수 있는 주체가 요구하는 모델이 분명히 있는 거죠. 저는 이게 어쩔 수 없는 방향이라고 생각하고 그게 옳다는 건 아니지만 아까 이종찬선생님 말씀하신대로 그러한 흐름을 내버려 두면 그것이 또 그런대로 여러 가지 시행착오가 화학작용을 거치면서 좀 정리되면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학제적인-아카데믹한 차원에서 크리티컬한 쪽은 어차피 소수의 현학적인 분석이나 용어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끼리 하는 거고 결국은 그 방향대로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거죠.

 

   지금 유사 인문학이 유행하면서 생긴 단 하나의!(웃음) 장점이라면, 사람들이 인문학에 대해 최소한의 관심을 가지게 되고 또 ‘인문학’이라는 영역에 대한 일종의 긍정적 인식의 저변이 확대된다는 점에 있을 것 같아요. 유시민같은 분들이 <알쓸신잡>같은 예능프로에 나와서 문화, 역사, 문학 이런 것들을 언급하고 그러고 나면 그 다음 날 박경리 소설의 매출이 엄청나게 올라가는 현상이 생기는데, 최소한의 그런 얄팍한 관심에 기댈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보는 거죠. 그런 면에서 대중 인문학 문화콘텐츠가 가진 것을 평가절하하기 보다는 나름대로 굴러가도록 내버려두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인위적으로 막을 수도 없고 분명히 산업의 측면도 있으니까요.




(계속)

작성일 : 2017.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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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연(소설가), 이종찬(문화평론가), 이성혁(사회, 문학평론가), 이수향(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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